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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엔 엄마가, 이틀 뒤인 오늘은 아버지가 119 앰블런스를 이용했다.
오전 8시. 아버지는 엄마에게 빵을 구워 커피를 타 주셨겠지? 지금쯤 옷을 입고 센터에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실 게다. "아버지, 센터 가실 거죠?" 거실문을 열었으나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진 누워계셨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께 '센터 가셔야죠.' 종이에 적어 보여드리니, 씩 웃으신다. '어디 아프세요?' 보여드렸는데 또 씩 웃기만 하신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늦잠을 주무시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고, 특히 일어나지 못하시니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토요일, 9시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 가는 일정인데 아버지가 더 위급해 보인다. "아버지, 일어나 보세요." 하면서 어깨 밑을 바쳤는데 몸이 불덩이다. 아, 이래서 그러셨구나.
전화한 119는 득달같이 날아왔다.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고 아버지 주민등록증을 찾는데, 아버지는 묵묵부답. 엄마는 모른다 하고, 지갑도 민증도 찾을 수가 없다. 내마음이 이미 아버지처럼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손이 떨리고 마음만 앞서지 주민증도 지갑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된다. 셀리야, 부모를 돌볼 이 너밖에 없으니 몸과 마음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꽁꽁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버진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얼굴은 이미 창백하고, 손을 덜덜덜 떨고 계신다. 링거 바늘을 꽂는데도 아프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신다. 간호대 교수를 하셨다는데 대체 학생들은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당직 의사는 맨 먼저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코로나 검사라니, 좀 엉뚱하다 싶다. 엄마는 왼쪽에 아버지는 오른쪽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링거를 맞고 계신다. 그런데, 간호사가 와서 " 두 분 모두 코로나 양성입니다."라고 한다. 아버진 즉시 좁은 격리실로 옮겨지고, 엄마 침대 역시 커튼이 쳐진다. 아버진 뭐가 그리 불안하신지 링거 꽂은 팔을 자꾸만 움직이신다. 움직임 때문에 호스가 막혀 약물이 중지되니, 날더러 계속 지키고 있으라 한다. 좁은 격리실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아버지, 흔한 코로나라고 해요. 약 먹고 시간 지나면 낫는 병이니 안심하셔요.' 그제야 안정을 찾으시는 아버지. 내가 유난히 겁 많은 것은 다 아버지를 닮아서구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가 CT촬영과 x-ray 촬영을 하는 동안 응급실엔 이미 네대의 구급차로 환자가 이송되었다. 머리를 다쳐 심각해 보이는 사람, 어깨뼈가 부서져 긴급한 수술을 할 사람,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았지만, 앳된 고등학생도 있다. 하나 하나 병상이 채워지는 동안 난 간호사가 간네준 간병인 리스트마다 핸드폰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yes를 해주지 않는다. 환자가 두 사람인 데다 전염 강한 코로나라서 그런가 보다. 의사가 권한 입원은 그래서 포기해야만 했다.
"아버지, 제발 막내 오면 보고 가셔요." 어제 엄마의 옆 병상엔 임종을 앞둔 어르신이 있었다. 자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즈막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집에 왔는데, 밤새 그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 그 어르신은 여전히 엄마 옆 침상에 누워계셨다. 자녀들의 얼굴도 한결 편해진 모습이다. 내게도 언젠가 저런 일이 닥치겠지 생각하니, 코끝이 벌써 찡해온다.
응급실에서 노래소리가 들린다. "아가, 나 오늘 입원했어. 여기 병원이란다." 하시던 어르신이 링거를 맞으며 허밍으로 흥얼, 흥얼 하신다. 병원에 입원한 일이 저리 즐거운 일은 아닐텐데, 불안함과 무서움을 노래로 이겨내는 모습이다. 보호자석에 앉아 차분히 기도하는 사람도 보인다. 응급실의 모습도 참으로 다양하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을 차리고, 저녁을 차려 드리는데 또 하루가 간다.
"우리 큰 딸이 고생이 많네. 미안해."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엄마, 아프지만 마, 맛있는 밥은 매일 해드릴 수 있어요."
난, 119가 싫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