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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후유증

요술공주 셀리 2024. 6. 10. 14:02

두런두런, 텃밭에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두 분 다 힘이 생겨서 풀을 뽑고 계신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잊으신 듯하다. 심각했던 상황을 저리 잊을 수 있다니 허허허, 참으로 편한 계산이다. "두 분 다 아직은 환자예요. 절대안정하셔야 해요. 밭일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야 빨리 회복하고 센터에 가시지요." 종이에 적어 보여드리니 엄마는 그제야 움직이신다. 집 안에 들어가시는 걸 확인하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때 엄마집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 후다닥 달려가보니 엄마가 잔디에서 풀을 뽑으시고, 아버진 이를 하지 말라 제지하시니 엄마가 왜 자꾸 참견하냐며, 화를 내신 상황이었다. 귀가 가는 아버지에게 큰소리 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버지가 또 뭔 일 내신줄 알고 난 화들짝 놀랐던 거고......

아버지가 의식이 없었을 때,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링거를 다 맞고 일어나다가 아버진 휘청~, 머리를 벽에 부딪히셨다. 엄마는 빠르게 회복하시는데, 어버지가 여전히 전 같지 않으시다. 큰 키, 긴 다리를 자꾸만 휘청휘청~. 나름 기억력이 좋으셨는데 당신이 아프다는 것도 잘 기억을 못 하시는지 자꾸만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몸은 회복되셨는데, 엄마에게 일어난 강렬한 기억이 아버지껜 어마무시한 스트레스였기에...... 

엄마의 외마디 소리에 왜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아파왔는지, 먹은 것이 또 급체를 했는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 손 발이 차갑고, 체한 배가 아프다. 이렇게 꽉 속이 막히면 혈압이 오르고 어지럽다. 동생이 사준 밴드를 덥혀 배에 올려놓고 간호사 출신 동생에게 배운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그러나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심호흡을 하다가 비비안나에게 sos를 청했다. "언니의 응원이 필요해요. 기도를 부탁합니다."

목요일과 토요일에 발생한 119사태가 내게도 큰 스트레스였었나보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니었나 보다. 엄마의 외마디 소리에 목요일, 토요일이 모두 소환되고 가슴이 콩닥콩닥.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많이 놀랐으니 말이다. 마음에 걱정이 쌓였었나 보다. 참 내원, 부모님은 멀쩡하신데 난 왜 뒷북을 치는 걸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구나. 이렇게 약해서야 원, 장녀인 내가 중심을 꽉 잡고 있어야한다며 다짐을 해본다.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는 이렇게 약해지면 안된다고 해본다.
그제야, 꽃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4~5일 사이에 섬색시꽃은 만개를 했고, 원추리와 백합이 새로 피었다. 우단동자 꽃도 제법 많고, 한련화도 빨강꽃 한 송이를 피웠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바로 이 것. 언제든 곁에 있던 일상. 오늘은 심심하고, 지루하리만큼 한가한 일상이 목 타게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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