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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꽃보다 열매

요술공주 셀리 2024. 6. 14. 09:03

서둘러야 한다. 어제처럼 또 고생할 수는 없다. 덮었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침 10시에 일을 했었다. 풀도 뽑고, 나무에 물도 주곤 했었는데, 벌써 여름이 왔는지 10시에도 해가 쨍쨍. 머리가 뜨거워서 밖에 서 있을 수가 없다.

"언니, 우리 집 보리수 따가." 동생이 허락도 했겠다. 내려가보니, 나뭇가지엔 새끼손가락만 한 루비가 달려있다. 저만치 등 굽은 아버지가 딸기를 따신다. 인기척을 해도 듣지 못하는 아버지. '난 딸기를 딸테니 넌, 보리수를 따거라.' 크크크 한석봉 코스프레인가? 아버지 어깨를 툭 치고 아는 체를 하자 "그려, 그려 다 따가. 우린 안 먹어." 하신다. 병원 다녀오시고 나서 좁은 어깨가 더 작아지셨다. 엄마가 좋아하신다고 아버진 저녁마다 저렇게 딸기를 따고 계신다.
 



어제저녁에 딴 동생네 보리수는 알도 크고 아주 잘 익었는데 오늘 아침에 딴 내 집 보리수는 콩알만 하다. 전지를 하고 안하고의 차이 때문이다. 제부가 전지 해준 동생 것은 나무는 작아도 열매는 손가락만 하고, 열매 무게로 가지를 땅에 코 박고 있는 내 것은 양은 많으나 크기가 작다. 아침 일찍 수확한 덕분에 오전이 또 이렇게 여유롭다.
 

 


그럼, 이제부터 작업개시! 어차피 체에 걸러야 할 터이니 이파리와 꽃잎만 대충 떼어내고 어제 딴 것과 오늘 딴 것을 합쳐 시작을 한다. 작년엔 과육에 붙어있는 작은 가지도 일일이 떼어냈지만 이제 대충대충 넘어가기로 한다. 거미 한 마리와 못생긴 까만 벌레 두 마리가 기어 나왔지만 흐르는 물에 씻겨 보내 버리고 그도 못 본 체한다. 뭐, 까짓 벌레쯤이야...... 씻는 과정만 철저히. 내 방식대로 식초를 희석한 물에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한 후, 2차 작업으로 go go!

큰 냄비에 보리수를 넣고 가열 시작! 오늘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정열적으로 펄펄 끓인 후 씨앗을 발라내는데, 이 과정이 깔딱 고개다. 세월아, 네월아 시간은 여유롭지만 손과 다리는 중노동이다. 씨앗을 다 골라낸 보리수 육즙은 설탕을 넣고 다시 끓여준다. 설탕을 많이 넣고 오래 끓여주면 보리수잼이요, 잼 되기 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춰주면 보리수청이 되는 작업. 오늘은 보리수청이다. 소금 한 꼬집, 소주 한 방울 추가는 나의 애정. 완성한 보리수청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갈증 날 때, 얼음 동동 띄워 먹으면 청량음료가 대수랴. 첫수확한 보리수로 올 여름 처음 만든 보리수청. 이 여름 효도는 '꽃보다 열매'인 보리수가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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