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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자동차 문 닫는 소리에 이어, "여보, 이거 옮겨야 해." 도란도란 부부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와, 옥이닷! 옥이가 왔다! 일요일에 오는 옥이가 어쩐 일로 월요일에 왔다. 옥이가 오는 순간 우리 동네는 순간 이동을 한다. 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고, 조도 또한 한 룩스 올라가 '상큼한 나라, 밝은 나라, 친절한 나라, 정겨운 나라'가 된다. 옥이는 해피 바이러스를 품은 백설공주 같다.
옥이가 왔으니 얼굴을 보러 갔다. 엊그제 만들어 성공한 오이지를 들고 한달음에 윗집으로 올라갔다 "내가 만든 오이지인데, 맛을 좀 봐줘요." 맛이야 내심 자신 있지만, 잠시 겸손을 떨어본다. 닷새만에 만났으니 서로 나눌 이야기가 한 냄비가 넘는다.
"언니, 만두전골 할 건데 내일 저녁에 같이 먹어요."
우왕, 이게 웬 횡재람. 옥이 만두 맛은 보증수표다. 워낙 음식에 관심도 많고 손맛도 상당하다. 김치면 김치, 웬만한 한국 요리를 통달한 고수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월요일에 이어, 화요일도 콧노래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달달하고 새콤한 보리수 향이 집안 가득.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이 가볍다. 오랜만에 삼총사가 만나서 좋고, 게다가 저녁엔 수제 만두를 먹는다니, 덩실덩실 마음이 날아간다.
이쁜 유리병에 보리수잼 두 병을 담았다. 새콤 달달한 보리수잼을 동생과 언니가 맛있게 먹어주기를.....
보리수잼 두 병을 들고 윗집 언니집에 도착하니, 구수한 멸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 익숙하고 친근한 냄새. 오늘 메뉴는 만두전골이구나, 기대 가득. 설렘 충전 완료다.
옥이 손은 역시 대빵 큰손이다. 왕만두와 갖은 채소, 쇠고기까지 만두전골 재료 한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식탁 위에서 끓고 있는 국물 한 국자, 만두 두 개를 앞접시에 덜어와 만두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우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의 향연, 입 안이 축제로구나!
옥이네 부부와 언니네 부부가 대화를 하건 말건, 난 묵언수행. 평소 2개를 먹던 사람이 말도 없이 왕만두 세 개를 순삭 해버렸다.



"사람이 먼저라서, 똘이를 장가보냈답니다. 워낙 힘이 센 녀석이라...... 사람을 물으면 안 되잖아요......" 말끝을 흐리는 주인 사장님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애지중지 가족처럼 키우던 개 '똘이'가 얼마 전, 목줄이 풀려 이웃을 공격했다고 한다. 이 일로 언니 부부는 고민 끝에 가족 같은 똘이를 보냈다고 하는데, 아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평소 유난히 개를 무서워해서 언니 집에 가고 싶어도 참았던 내 입장에선 한편 감사하기도 했지만, 이웃을 배려한 부부의 넓은 선택과 애틋함으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충분히 먹은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언니는 육포와 치즈, 하몽을 또 내왔다. 모두 배 부르다 하면서, 손은 육포와 하몽으로 향하고 볼그레한 와인처럼, 불그레한 술잔을 기울이다가 우리는 8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언니, 내일 또 봐요." 옥이가 내일 보자고 한다. 누구말이라고 어기겠는가.
어제 말하던 내일은 그새 오늘이 되었다. 아침부터 식빵을 반죽하고, 발효하고, 성형해서 옥이를 또 보러 윗집으로 올라갔다. 내 집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도 되겠지만 새로 산 옥이네 오븐을 사용해 보기 위해서다. 처음 사용하는 기계라서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다. 모양은 좀 비틀어졌으나 그동안 만든 빵 중에 최고의 크기, 최고의 맛이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사람 마음이 서로 맞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알아진 만큼, 쌓인 시간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조금씩 물러서 있기. 찰떡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기다려주기. 우린 아픔도 기쁨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오래된 장롱의 먼지처럼, 다복다복 채워진 정겨움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않고, 나이 차이와 관계없이 나란히 걸어가는,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 우린 그런 이웃이다. 함께할 수 있어서 더욱 빛이 나는 하루를 또 같이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