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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평등과 평준

요술공주 셀리 2024. 9. 6. 09:16

엄마는 꽃을 좋아하신다. 엄마는 좋아하는 꽃을 동생네 정원에서 맘껏 심고 가꾸셨다. 친정에 가는 날엔 늘 꽃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기쁨과 만족으로 이어졌다.
엄마를 닮았는지 나도 꽃을 좋아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꽃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자만이 뚝뚝 떨어지던 젊은 날엔, 고학력도 명예도 승진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짧은 머리에 파마까지 한 어른들. 승진하려고 점수 관리를 하는 어른들. 심지어 새빨간 원색 옷을 입는 어른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던 때. 그땐, 자만이 먼저였고 꽃과 나무, 자연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란 게 없었던 때였다.

그런데 우연히 교육청에 파견되면서 계획에도 없던 대학원에 진학하고 전문직 공부도 해서 승진도 했다. 일벌레로 지내던 전문직 시절이 있었기에 여유로운 시골 생활을 꿈 꾸게 되었다.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인생사 화무십일홍. 어른들의 말이 진리요, 항간에 떠도는 유머가 찰떡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50대엔 '학력의 평준화', '미모의 평준화', 60대는 은퇴와 더불어 '명예의 평준화'가 된단다. 70대엔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 먹고사는 게 거기서 거기. '물질의 평준화'가 되고, 80대엔 살아 있어도 누워 있는 자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건강도 평준화'가 된다나? 그리고 90대엔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나 또 거기서 거기라고.....

호미를 들고 풀을 뽑고,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을 난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긴 머리를 질끈 동여 매고 밭두둑에 앉아 모종을 쓰다듬거나, 가지를 따는 일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햇볕에 까맣게 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마트에 다니지만, 마음이 편하고 여유롭다. 무거운 명예보다 시골의 유유자적이 훨씬 가볍고 편하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미모의 평준화'를 떠올린다. 봐줄만한 미모가 없으니 볼 일도 없다. ㅋㅋㅋ 맞는 말이다.
난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으러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breakfast와 dinner는 생각나는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영어로 점심이 생각나지 않으니, lunch를 기억해 내는데 1박 2일이 걸렸다.
누가 만들었을까? '나이에 따른 평준화'의 이야기를. 기가 막힌 비유다. 맞는 말이어서 더 기가 막히다.

비 예보대로 아침에 비가 내렸다. "아침에 비가 와서 좋아. 배추모종에 물 안 줘도 되잖아." 하니, 남편이 웃으며 "완전 농사꾼이네." 한다.
그러나 내가 밭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하늘 아래 모든 꽃과 식물은 모두 평등하더라'라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은 손가락이 모두 휘어진 다음부터다. 땀으로 범벅이 되는 노동의 맛과 댓가를 알고부터다. 들판의 이름 없는 야생화나 내 정원의 화려한 장미꽃이 제 각각 매력이 있다는 것과 배추와 무가 모두 귀한 먹거리란 것을. 그 어떤 것도 천하지 않으니 땅에서 나는 것들은 모두 평등한 것이란 것도 알게 되더라. 싼 상추와 비싼 화초가 귀천이 어디 있겠는가?  

짧은 파마머리면 어떻고 긴 흰머리면 어떠랴. 씩씩하게 걸어 다님에 감사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기본에 충실한 건강한 삶이 최고인 것을......
다음 주엔 동생을 만나고, 추석엔 가족이 모이니, 기쁨과 기대로 이미 즐겁다. 그러면 됐지, 뭐. 그렇게 하루하루 좋아하는 꽃 보고, 좋아하는 일 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 챙겨 먹으면 됐지. 이웃과 함께 가끔 나들이 가고, 가끔 강변을 산책 하면서 건강을 지키면 될 터이고......
하루를 잘 보낸 저녁 어스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행복하면 된 거지 뭐.
나도, 꽃도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환하게 존재하기. 그렇게 살아가기.
하늘도 땅도 나도 모두 똑 같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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