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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룰루랄라 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안과에 갈 일도 없고 딱히 급한 일도 없으니, 어제저녁부터 어깨춤을 췄었다. 콧노래까지 불러젖혔는데......
부모님은 문단속이 철저하다. 딸이 늘 옆에서 잘 챙기는데도 외출할 땐 꽁꽁 문을 닫아두신다. 부모님이 노치원에 출근을 하면 딸은 꽁꽁 닫아둔 창문을 죄 열어놓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환기를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유난히 축 늘어진 배추가 눈에 띈다. 무름병이 유행한다더니 내 배추도 설마? 덜 자란 배추 세 포기의 이파리가 모두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저러다가 아무래도 가버릴 것만 같아 세 포기를 모두 뽑았는데 뿌리가 뭉툭하다. 9월까지 무더웠으니, 배추마저 더위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란다.

모종을 사다 심을 땐 37 포기였는데 더러는 뙤약볕에 타버리고, 두어 모종은 코딱지만 한 까만 벌레가 갉아먹고, 우렁이까지 갉아먹어 겨우겨우 30 포기를 유지했는데, 남은 배추는 삐리리 덜 자란 놈을 제하고 20 포기나 될까 모르겠다.
얼떨결에 뽑아온 배추 덕분에 계획에 없던 김치를 담느라 오전이 휙 지나가 버렸다. 그래, 오후엔 쉬자하고 커피를 들고 앉아있는데 이도 쉽지 않다. 남편이 창고로, 데크로, 마당으로 종획무진 저러고 다니니 혼자서 누워있기 도무지 눈치가 보인다. 게다가 툭하면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불러젖히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나도 그냥 일을 하리라.
남편은 창고정리. 나는 부엌정리. 발동이 걸린 김에 싱크대의 짐을 모두 빼냈다. 구석진 곳에서 나온 이름 모를 가루와 6년이 넘은 식재료가 아직도 있다니? 쓸데없이 모아놓은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와 나무젓가락까지 모두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름 정돈하며 사는 줄 알았는데 영 아니다. 오늘도 비우기가 먼저다.
양념통과 부침가루, 쌀통까지 챙기니 짐의 양이 제법이다. 별채에 쟁여놓은 짐도 꽤 되는데, 리모델링을 하려면 집을 새로 짓는 게 편하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만하다. 의, 식, 주 모두 챙겨 엄마 집에서 1달 살기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박스에 담아, 쇼핑백에 담아, 카트에 담아 옮기기를 수차례. 옆집인데도 오락가락 이미 2천보도 더 걸었다.
앗. 이러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가 나 수술했다고 당분간 텃밭에도 가지 말고, 집안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당연히 그러마 한 게 어제인데 그걸 홀라당 까먹어버렸다. 이를 어쩌나? 그러지 않아도 짐 정리하다 시간을 놓쳐 두 시간마다 투여하는 안약도 까먹었거늘.
"뭐가 중헌디." 엄마 말씀이 스쳐 지나간다. 에휴~, 갑자기 몰아닥치는 피곤. 심신이 노곤노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