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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사 가려고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직장에 다닐 땐, 매일 알람이 울렸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알람을 설정하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난 어떻게 40년 넘게 'early bird'로 살았을까? 은퇴 후, 출근 걱정을 하지 않는 아침의 여유는 꿀맛 중의 꿀맛이다. 그러다 보니 이젠 알람을 설정할 일이 거의 없다.
오늘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알람을 못 듣고 늦게 일어날까 봐 이른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알람 기능을 해제하고, 내친김에 무음까지 설정해 놓았다. 미사 중에 핸드폰이 울려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새벽 미사를 한 일요일은 여유가 있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부엌을 정리하다가 손주 생각을 했다. 어젯밤에 영상통화에서 손주와 처음으로 말(다민아, 맘마 먹었어요? 녜.)을 주고받았으니 생각만 해도 기특하고 이뻐서 웃음이 번진다.
일요일엔 가끔 낮에도 영통이 올 수 있으니 어서 무음을 해제해야 한다.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성당 가방을 열었으나 핸드폰이 없다. "어, 어디 있지?" 샅샅이 가방을 뒤지고 외출했던 옷의 호주머니도 뒤져보고,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핸드폰이 없다. "자기야, 내 폰에 전화 좀.." 그러나 이도 소용이 없다. 아, 무음......
"그럴 리가 없는데, 성당에 두고 왔나?" 남편과 함께 성당으로 갔다. 앉았던 자리를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안 보인다. 사무실에 들러 분실신고를 하고 "찾으면 보내 달라." 부탁을 했다. 이젠 마트다. 마트에선 달랑 coffee filter 한 개를 샀기 때문에 찾을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렀다. 그러나 역시나 헛걸음. 아, 정말로 당황스럽다. 이젠 어찌해야 하나? 이럴 리가 없는데? 정지신고를 하고 새 기기를 구입해야 하나? 핸드폰에 저장된 그 많은 정보는 어떡하지? 아이고 머리야......
집으로 돌아와 새벽의 동선을 역으로 되돌려 본다. 알람을 해지하고 무음을 설정했었다. 평소라면 성당 가방에 핸드폰을 넣었을 게다. 그런데 가방에 핸드폰은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은 딱 거기서 멈춰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핸드폰아, 제발......" 기도인지 탄식인지 간절한데 어디에도 핸드폰이 없으니 이제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힘이 빠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심코 옆의 방석을 치웠는데 엥? 핸드폰이잖아?
"어이구, 찾아서 다행이네. 그런데 자기, 이제 조심해야겠다." 남편은 잔소리 폭탄을 곱빼기로 퍼부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핸드폰아, 고마워!"
엉뚱한 곳에서 찾은 핸드폰. 어깨에 성당 가방을 메고 내려왔는데, 방에 두고 온 안경을 찾으러 갈 때, 손에 든 핸드폰을 잠시 소파 팔걸이에 올려놓았었나 보다. 안경을 쓰고 난 성당으로 직진을 했을 테고, 그렇다면 핸드폰은 내내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엄마가 소파에 앉으면서 두툼한 방석을 팔걸이에 치웠다는 가정이 성립한다면, 그러네. 방석 밑에 깔려 있는 핸드폰이 나만큼 숨이 막혔을 터. 그런 줄도 모르고 새 핸드폰을 사러 갈 뻔했다.
'핸드폰 찾아 삼만리'를 했다. 찾았으니 됐지만 아, 이건 심각한 건망증인가? 아니면 치매?
이러니, 오죽하면 내가 치매검사를 하러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