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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느타리버섯을 따다

요술공주 셀리 2024. 10. 21. 17:18

"언니, 봄에 심은 느타리가 달렸어요." 소프라노 옥이 목소리는 한 옥타브 더 올라가 있다. 신이 난 목소리다. 2주일 만에 내려온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며 옥이는 느타리버섯 한 봉지를 따 가지고 내려왔다. "언니, 우리 느타리 열렸어요. 언니네 것도 한 번 살펴보세요."
"우린 아직 안 달렸던데......"
"검정 그늘막을 쳐줘야 해요."
아, 그랬어야 했구나. 우린 검정 그늘막 없이 내방 쳐둬서 아직 안 열린 것일까? 암튼 마트에서 구매하지 않은 농사지은 느타리버섯을 옥이 덕분에 처음 보게 됐다.

집에 다녀온 남편이 "우리 집에도 허연게 매달렸던데 한 번 가봐." 한다. 허연 게 뭘까? 하고 냅다 집 뒷꼍으로 가 보니, 버섯 종균을 심어 놓은 은사시나무엔 검정 망이 쳐져 있었다. 발 빠른 남편이 득달같이 망을 쳐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에 잡힌 허연 물체가 있었으니, 오메 느타리버섯이다. 세상에 봄에 심어 놓은 종균이 버섯이 되다니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습하고 그늘진 곳에 버섯이 잘 나온대서 여름 내 열심히 물을 뿌려줬었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던 뒤꼍의 후미진 곳이었는데, 언제 저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탱글탱글한 버섯 한 다발을 손으로 뜯어 내는데, 깊고 진한 버섯향기가 올라온다. 이 또한 소름 돋는 새로운 경험이다. 느타리버섯은 마트에서 플라스틱 팩에 담아있는 것만 구매해 봤을 뿐이다.
올봄, 남편이 드릴로 구멍을 뚫어주면 그 구멍에 나는 버섯종균을 콕 심어줬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버섯은 아마 2년여 뒤에 열릴 거예요." 했는데, 그래서 이런 기적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버섯이 열린 그림이 떠올려지지 않았었는데, 내 손으로 버섯을 직접 딸 줄이야......



"느타리버섯으론 뭘 해 먹을까?" 남편과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우린 '소고기 샤부샤부'를 하기로 했다. "저 많은 버섯을 소비하려면 아무래도 잡채도 해야 할까 봐." 그래서 우린 시장에 가서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느타리버섯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한 바구니 담아왔다.
난 매일 버섯전골과 잡채, 버섯볶음 등 요리를 하면서 느타리버섯과 한동안 사랑에 푹 빠져 있을 것 같다. 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 날마다 이쁘게 자라고 있을 느타리. 언젠가 또 기적을 보여줄 표고버섯. 이 신세계는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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