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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노부모와 한 달 살기

요술공주 셀리 2024. 11. 18. 11:48

"선생님은 참 좋겠어요.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때, 친정부모와 함께 사는 동료가 참 부러웠었다. 그런데 동료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니에요. 저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요. 편치 않답니다."라고 말하는 동료가 그땐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내 집 리모델링을 하면서 부모님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 내 집은 동생네와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있다. 부모님은 30여 년 전부터 동생 집에서 살고 계신다.
매일 문안 인사하고, 주말엔 식사 챙겨드리고, 가끔 청소와 빨래를 해 드렸으니, 슬그머니 숟가락 두 개를 더 얹었는데 친정 부모님과의 동거가 그리 만만하지 않더라는 것.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부모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신세대? 인 우리와 life style이 다르니 첫날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밤새 TV를 켜고 주무시는 바람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아이고, 힘들다.
엄마가 치매판정을 받고부터 아버지는 애처가와 공처가를 자처하셨다. 살림살이는 기본이요, 엄마를 왕비처럼 모셨는데 과다한 애정공세가 엄마의 손발을 꽁꽁 묶었으니 어찌 보면 엄마는 창살 없는 수감자 같기도 해서 내가 보기에 아버지의 순애보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된 상태다.
90 노인의 살림살이. 게다가 똥손인 아버지는 식탁부터, 부엌, 화장실과 안방, 거실까지 흔적을 남기신다. 커피 가루와 물, 빵가루와 포도씨가 바닥에 흥건하고 아버지의 손길이 스쳐간 수도꼭지와 샤워기, 심지어 문고리는 고장 나기 일쑤라서 큰 딸은 날마다 쓸고 닦고, 사위는 날마다 연장을 들고 다닌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 목소리는 늘 큰소리다. 아버지의 큰 목소리를 이른 새벽에 들을라치면 119를 부르던 새벽이 자꾸 생각이 나서, 솥뚜껑을 보고도 자라를 본 사람처럼, 아버지의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왜, 이리도 공사가 늦는 거야. 빨리 내 집에 가서 마음 편히 지내고 싶단 말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망을 했었다. 친정부모와 함께 살았던 동료가 왜 힘들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니 말이다.
"아버지, 저희 이제 주말에 집에 가요." 했더니 "안 가면 안 되니? 같이 사니 너무 좋은데....." 하신다. "아버지도 참. 바로 옆집에 살고 있잖아요. 매일 보는데요 뭘...... 잠만 따로 자는 건데요."
참, 내원. 부모님 옆집에 살아 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기고 있거늘 절더러 더 이상 어쩌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왜, 계속 아버지 말이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 뉴스에선 전국이 꽁꽁 얼었다고 기상 캐스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른 아침엔 밖에 나가기 겁이 났지만, 햇볕이 생기니 코끝이 썰렁 해도 여전히 가을날씨다. 노치원에 가신 조용한 집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빗자루를 들고 부모님 방으로 갔다. 노치원에서 만든 그림과 작품을 화장대에 가지런히 진열을 해 놓으신 엄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마치 유치원생 작품 같다.
"늙으면 애처럼 된다."라고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러셨는데......
행동도, 생각도 애 같더니 그림도 애처럼 그리셨네.
엄마방에선 할머니 냄새가 난다. 결코 향기롭지 않은 냄새.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그리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집으로 가기 전에 이불빨래부터 해야겠다. 모레부터 따뜻해진다 하니 아무리 바빠도 초가을부터 사용하던 저 극세사 이불부터 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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