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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남편 생일이다.
생일선물로 내 집에 오늘 입주하게 해 주겠다는 시공사의 약속은 이미 깨진 상태다. 사장은 전화도 안 받고 내가 보낸 카톡은 일주일째 방치 상태다.
살림살이 낯선 이모집에서 음식을 하기도 뭣해서 "가족모임은 다음에 하자" 했는데도 굳이 아이들이 내려오겠단다.
그러니 동생집이지만, 창문을 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쓸고 닦고 아이들 맞이 준비를 했다. 남편이 짓는 창고 조수하랴, 공사장 챙기랴, 눈 코 뜰 새가 없다. 아이들이 아빠의 최애 음식인 회를 떠 온다고 했지만 작은 아들과 며느리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리나케 정육점에 가서 육전 재료를 사 와 후다닥 육전을 만들었다. 막 구워낸 육전 한 접시를 저녁반찬으로 내놓으니 남편이 맛있다고 흐뭇해했다. 어제 일이다.
어젯밤 늦게 손주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제 19개월 된 손주는 나만 보면 생글생글 웃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보고 있어도 또 보고만 싶어 진다. 그 손주가 미역국을 잘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사온 소고기는 수입산. 손주에게 황성 한우를 먹이고 싶어 할 일이 있다는 남편을 졸라 육질이 좋다는 먼 마트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아들 아니, 손주 먹일 국거리 한 덩어리를 더 포장해 왔다.
아들은 영통에서 "엄마, 다민이는 아직 잡곡을 못 먹으니 흰쌀밥을 해주세요." 했다. 어제한 잡곡밥이 한 솥인데도 어쩌랴, 흰쌀을 씻어 불려놓고 미역국을 끓였다. 할 일이 많은데 오늘따라 싱크대와 옷장도 확인해야 하고 난로집도 전화를 해야는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다. 손주 얼굴이 아른아른, 마음이 바빠지고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시계를 자꾸만 바라보고 창밖을 서성인다. 건강하게 손주와 만나려고 1달 내내 외출을 하려면 마스크를 했었다. 상큼한 할머니 냄새를 기억하라고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분명 남편 생일인데 나는 왜 손주만 생각하고 자꾸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챙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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