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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독박을 쓰다

요술공주 셀리 2025. 1. 15. 15:25

"열녀 났네, 열녀가 났어." 남편을 위해서 이런 고생을 한다면 열녀겠으나 오직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동생은 주말에 출국하는데, 만두를 먹여보내겠다고 무거운 허리를 부여잡고 아침부터 만두를 만들었다. 애초의 계획은 동생 부부와 함께 만들고자 했으나 동생은 어제부터 몸져누웠다.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미리 장 봐온 두부며, 고기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오늘은 꼭 혼자서라도 만두를 만들어야 한다.

돼지고기는 밑간을 해서 한 번 익혀 놓는다. 가족 모두 고기만두를 좋아하니 소고기 간 것도 따로 익혀 섞어주고...... 부추가 없으니 대신 대파를 쫑쫑 썰어 넣었다. 그리고 숙주나물도 삶았다. 부추 대신 냉장고에서 돌아다니는 버섯도 넣었는데 글쎄다. 두부는 보자기에 넣어 물기를 빼줬다. 준비한 재료에 마늘과 참기름, 소금, 설탕을 넣어 잘 버무리면 고기만두의 재료가 완성된다.




그러나 난 김치만두를 좋아하니 배추김치 한 포기를 물에 씻어 짠기를 빼고 잘게 썰어 덜어놓은 고기만두 재료에 잘 섞어 김치만두소를 만들었다.



우선 재료가 가장 많은 고기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남편과 제부가 좋아하니, 만두는 명절에 필수다. 시작한 만두는 왕만두피에 소를 듬뿍듬뿍 넣어도 만두소 재료가 줄지를 않는다. 허리도 뻐근, 머리는 지끈, 지루하기 짝이 없는 끝도 없는 단순 노동이다. 동생아, 하필 여기 와서 왜 아픈 거니? 같이 만들었으면 수다와 함께 알콩달콩 재미 있게 뚝딱 만들었을텐데......
그러다가 퍼뜩 생각난 것. "앗. 남편이 최애 하는 삭힌 고추를 빼먹었잖아?" 그제야 삭힌 고추를 꺼내와 잘게 다지고 꼭 짜서 별도의 표식을 한 고추만두를 만들었다. "휴~, 중간에 생각 나서 다행이다." 남편은 작년에도 고추만두 먹고 싶다고 노래를 했었는데 말이다.
큰 쟁반 하나에 고기만두 40개와 고추만두 30개가 담겼다. 새로 산 냉동고에 쟁반 째 얼렸다. 올해 인터넷에서 새로 배운 팁이다. 냉동고에 미리 얼린 만두는 눌어붙지 않아 비닐봉지에 소분할 때도, 떼어낼 때도 아주 좋다고......



"아휴, 힘들어. 인내심 바닥이다." 꼭 아이 한 명 업고 일하는 듯한 묵지근한 허리. 이 많은 걸 혼자 하려니, 손가락에 쥐가 나고 도저히 진력이 나서 더는 못하겠다.
하던 일을 멈추고 소파에 길게 누워버렸다. 동생에게 괜찮냐 전활 하니 병원에 가야겠다고 한다. 몸살에 소화불량까지 겹쳐 힘들다고......

아이고, 저런.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 보관하던 김치만두소를 꺼내 속도를 내본다. "뭐, 제까짓 게 많은들 오늘 안으로 다 만들 수 있겠지."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시작한다. 다행히 김치만두 소는 질퍽하지 않아 속도가 붙었다. 아이들 좋아하는 고기만두는 얄팍하고 밝은 색, 내 김치만두는 통통하고 어두운 색, 남편의 고추만두는 주름을 잡아 각각 표시했으니 올 설에는 만두도 취향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을 게다.
그러나 나는, 만두 만든다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독박 쓴 날이다. 제발 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두맛만큼은 대박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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