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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보다 더 정성을 들여 저녁을 지었다. 우족탕과 육전, 명란젓에 참기름 듬뿍 얹어서 저녁을 차려드렸다. 육류만 좋아하시는 두 분이 과일 샐러드는 잘 드시니 점심에 이어 과일 샐러드도 챙겨드리고......
국 한 숟가락 뜨시고 "맛있다." 전 한 점 드시면서 "맛있다"를 연발하신다. "엄마, 이 겉절이 제가 한 거예요." 했더니, "우리 딸, 이제 살림 잘하네." 하신다. 식탁에 마주 앉아, 엄마에게 쓸데없는 말을 계속 던져 드렸다. 그제야 마음이 풀린 엄마가 이런저런 말씀을 쏟아 놓으신다. "난 큰며느리여도 제사가 없는데, 넌 차례를 지내는구나."부터 시작해 반은 참말이며 반은 거짓인 말씀을 하신다. 치매 노인의 창의적인? 말씀을 맞네, 맞어 하며 계속 맞장구를 쳐드렸다. 오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속상했던 엄마의 마음이 풀린 듯하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여동생은 중국에, 막내는 뉴질랜드에 있으니 엄마집은 적막강산이다. 엄마는 당신 마음이 더 외롭다고 오전 내내 누워서 스트라이크를 벌이셨다. 하루 종일 낮잠으로 기다림을 밀어내고 계셨던 거다. 외손주가 세배드리러 갔을 때도 엄마는 주무시고 계시다며, 아이들이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왔었다. 아버지는 자식들 오면 주차해야 한다고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눈을 하루 종일 쓸고 계셨고.....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부모님 집에 갔다. "아버지, 대전 아들은 둘째 외손녀가 태어나서 못 온다고 용돈만 보내왔네요." 봉투를 드리니, 누워계시던 엄마가 "누가 왔어?" 하며 일어나신다. 청각장애인 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써 드렸다. "대전 아들은 손녀가 태어나서 못 오고, 막내는 장모님이 아파서 못 오고, 작은딸은 주 초에 중국에 갔대요." 써 드리니 이를 읽은 아버지는 "그럼, 아무도 안오는거여?"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이 일그러지신다. 엄마 또한 "그런 줄도 모르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네" 하시는데, 왜 난 코 끝이 찡한지 모르겠다. "에이, 아무도 없긴, 여기 큰딸이 있잖아. 나도 서울로 설 쇠러 갈까 하다 엄마 때문에 애들 보고 내려오라고 했거든?"
아버지가 종이에 답글을 쓰셨는데, "너 없었으면 우린 독거노인 될 뻔했구나. 큰 딸이 최고여."라고 써서 보여주셨다. "맞아, 맞아. 큰 딸이 최고지." 하는데 왜 눈물이 핑~ 하냐고......
하루 종일 펑펑 눈이 오고 있다. 그만 좀 오면 좋으련만, 자식들의 귀향길을 부모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까? 애들이 눈 오기 전에 와서 다행이고, 더 쌓이기 전에 올라가서 얼마마 다행인가? 아들이 명절에 내려오는 게 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내려오지 않아 낙담을 하는 부모님을 보니 참 마음이 그렇다. 세상 일은 당연한 게 없는 거구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 대설주의보 때문에 애들이 안 내려와서 우린 걱정이 없어요." 써 드리니 "그러네." 하면서 그제야 웃으시는데, 틀니를 뺀 듬성 듬성한 치아 사이로 그 웃음도 새 버리는 게 나는 또 왜 보이냐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강원도. 어둠도 엄마의 흰머리만큼, 눈처럼 하얗기만하다. 엄마처럼 나도 반은 참말이었고 반은 거짓을 말씀드렸다는 걸 부모님은 잘 아는지, 모르시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