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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전화하래서 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딸에게 전화를 해 놓고, 왜 전화했는지 모른다고 하시는 엄마.
"그럼, 아버지께 뭔지 물어보세요."
"지금? 그래, 알았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이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꿀잠을 자고 있는 아침에 쿵쾅쿵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네 엄마가 또......" 깜짝 놀라 아버지를 따라나섰더니, 엄마는 호미로 큰 돌을 파내고 계셨다.
"계단 입구가 좁아서 넓히려고......" 10kg이 넘는 큰 돌을 파내고 계셨는데,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일이다. 봄만 되면 엄마는 호미를 들고 계단을 무너뜨리고, 전지가위를 들고 잘 자란 나무를 싹둑싹둑 잘라 내신다. 진달래꽃을 보시려고, 진달래를 침범하는 미스김라일락을 가차 없이 쳐버리는 분. 뭘 하겠다고 꽂히면 무거워서 들지도 못하는 돌덩이도 캐내시는 분이 엄마다. 그러나 시작은 엄마가 하고 그 뒷수습은 큰 딸이 하는 게 문제.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싹 틔운 감자를 엄마에게 갖다 드렸더니 후다닥 씨감자를 만들어 놓으셨다. 감자눈을 따라 예쁘게 잘라 놓은 씨감자를 보시며, "2~3일 뒤에 심으면 돼."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버지와 함께 엄마네 밭에 심고 계셨다. 두런두런 소리를 따라가 보니, 이미 다 심어놓은 뒤. "아이고, 엄마. 모레 심으라더니 벌써 다 심으셨어요? 게다가 여기다 심으면 물은 어떻게 주라고......"
수도와 먼 곳인 데다, 언제부턴가 밭농사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님이다. 결국, 어제 심은 감자를 오늘 아침에 모두 캐서 내 밭으로 옮겨 심느라 고생을 했다. 그제야 물을 흠뻑 줄 수 있었다. 한 번도 힘든 감자 심기를 두 번이나 심은 셈이 되었으니,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고......
엄마의 치매가 더 나빠진 걸까? 자꾸 일을 만드시는 엄마라서 속 상하고, 그 걱정을 혼자 감당하려니 오늘은 울컥하는 것이다.
왜, 일은 늘 한꺼번에 오는 걸까?
며칠 째, 엄마집에만 가면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쓰레기봉투가 집 안에 있어 그런가 해서 열심히 쓰레기를 버렸지만, 쿰쿰한 쓰레기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다. 식빵과 계란을 채우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냉장고에서 후끈, 뜨거운 바람이 훅 불어온다. 그리고 냉동고 문을 연 순간, 시커먼 곰팡이보다 더 지독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해동하면서 생긴 액체가 곳곳에 흥건하고, 비닐봉지 안의 음식들이 모두 곰팡이 천지다. 쓰레기 냄새의 진원지가 냉동고였다니......
곰팡이를 닦아내느라 수십 번 행주를 빨았지만, 온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큰 그릇에 썩은 음식을 담아 버린 것만 수차례. 이름 있는 명인에게 산 청국장과 강낭콩, 삶은 나물과 이름 모를 아까운 음식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살림을 놓은 엄마. 남편의 직장을 따라 외국에 거주하는 동생네. 청소와 빨래, 식사를 챙겨드리는 일 보다, 이렇게 갑자기 생기는 일을 처리하는 게 난 많이 힘들다. 일단, 빵과 계란 등을 꺼내어 내 집의 냉장고에 옮겼으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AS center에 sos를 신청했으나, 순 번을 기다리라는 문자만 오고...... 만약 수리가 안되어 냉장고를 새로 구입하라고 하면 그도 또한 걱정이다.
엄마밭에서 캔 감자를 다시 옮겨 심는 동안 속상한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사방 천지로 불어난 딸기를 정리해 주고, 또 풀까지 뽑았다. 노동이,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다니 일터를 화단으로 옮겼다. 아스틸베 열 그루를 심었다. 꽃을 심는 일이 내겐 힐링인가 보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몸을 움직이는 노동이 마음의 치유가 된다면, 까짓 돌덩이 한 양동이쯤이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멩이를 주워와 북쪽화단에 둥근 디딤돌을 완성했다. 동그란 꽃동산이 새로 생긴 것 같아 이제야 마음이 흐뭇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손 끝에 내려놓기를 참 잘했다 싶다. 오늘은 내 호미가 효자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