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은 늦잠을 자면 안 되는 날이다. 남편은 청주의 선산에 벌초를 가는 날이고, 나는 성당에 반모임이 있는 날이다. 센터 휴무일이어서 부모님 식사도 챙겨드려야 해서 부득이 벌초에 동행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 성당에 도착했다. 넓은 구역을 청소해야 하는 성당 청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여러 명이 분담을 해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늘은 청소 봉사와 반 모임이 겹쳐진 날이다. 그런데 다른 반도 우리와 같은 입장. 우연히 같은 날, 서로 다른 반모임을 같은 장소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반에서 국수를 넉넉히 준비한다고, 함께 먹자고 했다. 생각지 않은 잔치국수라니 반갑고 감사할 일이다. 1시간여 반모임을 마치고 나오니, 성당 식당에선 구수한 멸치육수 향이 진동을 한다. 우와, 이 얼마만인가?
식당의 부엌에 모인 사람만 십여 명. 한두 번 해본 솜씨들이 아니다. 손도 빠르고, 약 30인 분 정도의 국수도 척척 삶아냈다. 큰 양푼에 부추를 썰어 넣고 밀가루를 썩썩 비벼 커다란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잘도 부쳐낸다. 한쪽에선 오이지를 무치고, 그 옆에선 계란을 삶아 반으로 뚝뚝 잘라내니, 잔칫집을 방불케 했다.



부추전과 배추김치, 오이 무침에 미역 볶음, 그리고 잔치국수라. 어릴 적 결혼 잔칫집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소한 양념간장을 얹은 따끈한 잔치국수를 후루룩 뚝딱, 순삭을 했다. 4월이지만 후둑후둑 비 오는 을씨년스런 날씨에 딱 어울리는 식사였다.
단비다. 아니 약비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목이 타는 봄에게 보약일 터. 나도 호미를 걸어두고 보약 같은 휴식을 취해본다. 눈만 뜨면 화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느라, 그동안 미뤄 둔 성당일. 오후엔 '본당 15년 사' 숙제를 시작해야겠다. 촉촉히 젖은 대지에 또닥또닥 낙숫물 노래소리가 떠다닌다. 초록이 춤추는 흥겹고 정겨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