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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장부'다. 워킹맘이 흔치 않을 때, 일치감치 일을 하셨었다. 배포도 남 다르고, 아이디어도 많은 잘 나가는 사장님이셨다. 아버지가 교직에서 퇴임을 하시고, 부모님은 강원도에 귀촌하셨다. 엄마는 낯 선 농사도 사업처럼 똘똘하게 잘 지으셨고 꽃밭도 기가 막히게 잘 꾸미셨다.
그런데 "난, 살림이 싫어졌어. 그만하고 싶어." 80세가 넘어갈 즈음,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백년 손님 사위가 내려와도 부엌을 찾지 않으셨다.
사용한 지 20년이 넘은 냉장고가 지난주 '번 아웃'이 되었다.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하는 원인이 작동을 멈춘 냉장고 때문이란 걸 며칠 뒤에 알았다. AS를 요청했는데, center 직원은 냉장고를 열어보고, "바꾸실 때가 한참 지났네요"라고 했다. 냉동고를 비우고, 썩은 음식과 곰팡이를 제거하는데 반나절이나 걸렸다.


냉장고의 음식도 마찬가지. 10년도 넘은 말라비틀어진 고추장과 곰팡이 난 쌈장. 초고추장과 마요네즈, 각종 소스통들을 비워내는데 반나절.

김치통과 반창통들을 깨끗이 씻어 놓았을 때서야 엄마의 냉장고가 정리되었다.

오늘, 아침에 '폐가전 차량'이 와서 고장 난 엄마의 냉장고를 실어갔다. 어쩐지 익숙한 이 일들. 이런 일이 나는 처음이 아니다. 80 중반을 넘기신 시부모님이 시동생네로 거처를 옮겼을 때도, 난 똑같은 절차로 시어머님의 냉장고를 비웠었다. 그리고 4년 뒤 시부모님도 돌아가셨다.
냉장고 없이 며칠을 고생하신 부모님께 오늘 새 냉장고가 온다고 하니 좋아하셨다. 냉장고는 점심 나절 배달이 되었고, 빈 그자리에 채워졌는데, 귀여운 size의 냉장고. 크기 때문일까? 뭔가 1%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center에서 귀가하신 엄마가 냉장고부터 찾으셨다. "뭐야, 왜 이렇게 작아. 다시 바꿔와." 큰 소리로 화를 내셔서 깜짝 놀랐다. 동생이 사 준 새 냉장고. 엄마가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작다고 저리 화를 내시니 당황스럽고 난감할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