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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건립된 충북도지사 관사를 리모델링하여 개관한 '충북문화관'은 청주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과 더불어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비교적 소박한 규모이지만 매년 대관전과 기획전을 병행하며 청주 시민들을 위한 문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데, 충북 지역의 연고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전도 꾸준히 개최했다. 올해 하반기 기획전으로 마련한 《이기원 초대전: 추상, 끝나지 않은 길》도 해당 기획의 일환이다.
사실 이기원(李基遠, 1927-2017)은 해방 후 1세대에 해당하는 모더니스트 작가임에도 비슷한 연배인 정창섭, 윤형근, 박서보, 정상화 등 앵포르멜에서 단색화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들에 비해 그 존재가 퍽 생소하다. 어쩌면 90년의 생애동안 개인전을 1968년 단 한 번 밖에 열지 않은 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창작미술협회전 등 단체전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점, 그리고 상업적으론 단 한 점의 작품도 매매하지 않은 점이 그 원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유족들은 작가 사후에도 남겨진 유작과 아카이브를 지금까지 간직해 왔고, 5주기를 맞이하는 지금 마침내 유작전이 성사됨으로써 이들은 마침내 빛을 보았다.
아무튼 이번 전시는 이기원의 공식적인 첫 번째 유작전인 만큼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중 30점과, 생전에 집필한 미술 교과서 및 이력서, 화구 등 각종 아카이브를 엄선하여 선보이고 있다. 비록 전시 공간이 넓지 않은 관계로 많은 작품이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출품작 다수가 대작에 속하고 1960년대의 초기작부터 2010년대의 후기작까지 모두 망라하였기에 이기원의 작품세계를 요약해서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대의 추상작가 대부분이 앵포르멜의 세례를 받았듯 이기원도 초기에는 앵포르멜 계열의 작업을 했지만,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기하학적인 색 면의 분할과 은은한 색채의 조화를 절충한 서정적인 추상 화풍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에 대거 소개되었고, 이후에도 조금씩 화풍의 변화는 감지되지만 서정적인 정서를 투영하려는 의지는 계속되었다(출품작 중 "투영"이라는 제목이 유독 많은 것도 이를 암시하는 듯).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단순히 충북 지역 연고 작가를 소개하는 의미를 넘어 그동안 대형 운동사 위주로 서술되었던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에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비록 이기원의 추상회화는 화단의 주류에서 보자면 다소 동떨어지기는 했으나, 바꾸어 말하면 화단의 유행에 쉽사리 타협하지 않고 추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묵묵히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러한 점에서 <좋은 날 10-1a>는 작가가 회화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한 지점이 무엇인지를 충실하게 요약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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