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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다시, 강원도

요술공주 셀리 2023. 1. 22. 10:23

두런두런 남자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집안이 낯설다. 아, 서울이구나.
그럼 그렇지 새벽에 사람 소리라니... 강원도 산골에선 거의 없는 일인데, 새벽인데도 사람들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인지 나가는 차량보다 들어오는 차량이 많더니 늦게 도착한 귀성객인가 보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 차례준비를 한다. 미리 다 만들어 온 음식이라서 데우기만 하면 된다. 차례상을 차리고 예를 올리는데 새 며느리가 조상님들께 처음 인사드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어서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차례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포식하고 출발하려는데 굳이 '파스타'를 해주겠다고 아들이 우릴 붙잡는다. 큰 아들이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올라오기 전부터 파스타를 해 주겠다고 떵떵거렸는데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주었다. 마늘도 얇게 썰고 건고추도 채를 써는데 오, 옛날의 아들이 아니다. 결혼 전엔 부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 후, 입덧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하더니 부엌에 서 있는 아들이 제법 어울리니 말이다. 그래서 결혼은 하고 볼 일이다. 면을 삶아 프라이팬에 넣고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접시에 새우와 올리브유를 올리고, 통후추까지 갈아 넣어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담아 온 파스타는 우와! 담백, 칼칼, 고소한 맛이 전문가 솜씨다. 맛있다고 했더니 여러 번 하다 보니 면 삶기부터 이제 색깔만 보면 안다나? 아들은 신이 났다. 다음에는 김치찜이랑 다양한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에고 아들아, 할머니가 계셨으면 혼쭐이 날 일을 저리 신나게 말하고 있네.
어머니는 아들, 손자가 부엌에 와서 머뭇거리는 걸 막무가내셨다. 친구들 중에도 아들이 설겆이를 하면 속이 상해서 혼냈다는 시어미가 있는데 저 아인 엄마가 맞장구를 쳐주니 내가 시어미란 걸 잊었나 보다. 그러나, 걱정 말거라. 난 네가 아내를 위해 부엌에서 일하고 도와주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서울을 출발했는데 강변도로부터 주차장이다. 서울을 빠져나오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양평 오는 국도도 마찬가지. 명절이라서 이동차량이 많으니 길 막힘은 당연한 일이나 지루하지 않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한 따뜻한 시간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에야 도착한 강원도 집은 1박 2일을 비웠다고 썰~렁 냉기가 가득한데도 남편은 "어느새 여기가 집이라고 편하고 좋다"라고 한다. 이사 온 지 10개월인데 강원도가 house가 아닌 home 이 된 것이다. 짐 정리는 나중에 하자며 난로에 나무부터 넣고 불을 지핀다. ㅎㅎㅎ 여기가 우리 집이다. 그래서 여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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