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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하기 싫다고 하시니 전염이 되었는지 나도 나물 만들기가 싫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정월 대보름을 기억하셨을까?
"나는 바보여, 나이가 들었어. 난 몰라" 말끝마다 그렇게 변명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되시는 엄마다. 아침에도 교회 가실 준비 하라고 전화를 드리니, 저녁인 줄 알았다면서 잠자러 가려고 하셨단다. 그런 분이 어떻게 대보름을 기억한 것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2018년에 말려놓은 고춧잎과 취나물은 어디서 찾아오신 것일까? 엄마 몰래 이들을 감추지 않았다면 오늘, 어쩌면 9가지 나물을 다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 덕분에 김치를 담갔듯이 오늘도 엄마 때문에 나물을 만들어 본다.
시래기와 가지나물에 도전해 본다. 인터넷과 유튜브보다 요리 잘하는 옥이의 레시피를 더 선호해서, 옥이가 하라는 대로 시도해 본다.
물에 불린 시래기와 가지는 먹기 좋게 적당히 썰어 물기가 적당한 상태로 짜준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는데 들기름, 다진 마늘, 파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준다.
간이 맞으면 프라이팬에서 볶아준다.
질기면 물 약간을 부어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졸여주라고 했는데, 이 과정은 생략.
집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한데, 이럴 수가? 대박! 맛있다!
자신이 없어 딱 저녁에 먹을 만큼 아주 적은 양으로 도전한 것인데, 이렇게 대박 맛일 줄 알았다면 더 했어야 했는데 후회막심.
손이 작아서 그렇다. 대범하지 못해 소심하고, 위도 작아 위대하지 못해 위소하고, 배짱도 없고.
취나물도, 고춧잎도, 호박나물도 다 해 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알아가고, 이렇게 작은 성공이 참 재미가 있다.
일할 때는 몰랐던 이런 재미를 엄마 때문에 찾게 되었다.
부모님 저녁상엔 당연히 나물반찬을 올렸다. "엄마! 이 나물, 내가 만들었어." 한 옥타브 높게 말하는 딸에게 하시는 말씀, " 맛있네. 짜지도 않고, 잘했네." 하신다.
정월 대보름. 나물로 생긴 화가 났던 일은 오간데 없이, 엄마와 딸은 나물로 화해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