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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랑

어머니 범종소리(최동호)

요술공주 셀리 2023. 2. 9. 15:44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집에 셋방살이하던 아주머니가 외아들 공부시키려 콩나물 키우던 물방울 소리가

얇은 벽 너머에서 기도처럼 들려왔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도 들렸다.

불을 꺼뜨리지 않고 단잠을 자게 해 주시던,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콩나물 장수 홀어머니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 가시고 콩나물 내리는 새벽 소리가 지나가면 

불덩어리에서 연탄재 떼어내던 그 정성스러움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잠 자주 깨는 요즈음 그 나지막한 소리들이 옛 기억에서 살아 나와,

산사의 새벽 범종소리가 미약한 생명들을 보살피듯,

스산한 가슴속에 들어와 맴돌며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고 간다.

 

(2022 제3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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