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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인연 5

요술공주 셀리 2023. 3. 9. 09:32

국문과를 졸업했다고 다 시인이 되지는 않는다. 미대 나온 사람이 모두 화가가 아닌 것처럼......

고교 친구인 s가 '국어교사 박종명'을 소개해 주었다. 이름만 들었을 땐 당연히 남성인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키 크고 맑은 인상의 여성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두 사람은 서로 절친이었는데 '아주 총명하고 지혜롭다'며 박교사를 소개하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연구정보원 교육연구사로 일할 때였다. 그 당시 박종명은 예일여중 국어교사였고, 나는 교육자료를 발간하면서 박교사를 편집위원으로 추천하여 함께 일했다. 차분차분 이야기하는 박교사는 조용한 인상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피력하고, 문장과 필체에선 이름처럼 힘이 느껴지는 매력 덩어리였다. 그런데 우린 일(자료 발간)이 만료된 후에는, 아주 오랜 시간 서로 잊힌 사람이 되었었다.

내 절친이기도 한 s를 통해 가끔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듣곤 했는데, 교감 승진에 이어 교장이 되었다면서, 친구가 들려준 스토리는 가히 소설을 방불케 했다. 우여곡절의 스토리가 기막히고 다이내믹해서 구구절절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는 스토리였었다.

우린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장회의에서 자주 만났고 반갑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았다. 좋은 정보와 프로그램을 공유하려고 내가 예일여고에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동갑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서로 '하오'하는 사이로 지낸다.) 그때 받은 시집이 '사랑 한번 안 해본 것처럼'이다. 쓱 한 번 읽어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책장에 장식품으로 두었다가 강원도에서 다시 읽어 보고, 지금은 시인 박종명에게 푹 빠져 지내고 있다.
그녀의 블로그를 통해서 서정시학의 대가 '시인 최동호'도 알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제 도착한 선물, 두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봄을 타나요'와 '제왕나비'다.
최동호의 시를 읽고 "쿵" 마음이 떨렸던 이야기를 듣고  박시인이 함께 보내준 것.
박종명의 '봄을 타나요'를 맨 먼저 읽어보았다.
 

봄을 타나요?
                                        (박종명)
 
얼었던 흙이 풀릴 때쯤이면
마음 길 트일까요?
 
기억 한 잎만으로
닫힌 문을 두드립니다
 
손톱 뜯으며 썼다가 지우는
이력서 여백 위로
찬비 내리는 소리 고이고
 
열린 창문 틈으로 비집는 봄새 몇
작은 눈 맞추면
눌렀던 울음 터질까요?
 
마음도 이골이 나서
이젠 기울지 말라고 합니다
기댈 것 없이 사라진 시간
그저 비우라고 합니다
 
물관을 열고
밤새 길어올리면
늦깎이 상처까지 어쩌면
아슴아슴 아물까요?
 
당신도 봄을 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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