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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누가 왔나 보다.
비가, 들어오라고 하기도 전에 성큼 들어왔다.
장화도 신지 않고 발그레한 볼을 하고 들어온 비는, 수줍디 수줍은 보슬비였다.
가녀리지만 끈질지고, 부드럽고 넉넉한 그녀가 촉촉한 눈망울을 굴리며 들려준 이야기는, 법정스님의 말씀이었다.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마라
편안한 발걸음으로 쉬어가라
무엇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묵묵히 쉬면서 천천히 가라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말라
놓으면 자유(自由)요
집착함은 노예(奴隷)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다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이 곧 수행(修行)이다
쉼은 삶의 정지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쉼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고역(苦役)일 뿐이다
그릇은 빈 공간이 있어
그릇이 되는 이유다
지친 몸을 쉬는 방(房)도
빈 공간을 이용하게 된다
빈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삶의 빈 공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쉼은 더욱 소중하다
쉼은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쉼은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풍요와 자유를 함께 누려라
쉼이란 놓음이다
마음이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벗어나 쉬는 것이다
그래서 쉼은 중요한 삶이다
오는 인연 막지 않는 삶이요
가는 인연 잡지 않는 삶이다
시비(是非)가 끊어진 자리
마음으로 탓할 게 없고
마음으로 낯을 가릴 게 없는
그런 자리의 쉼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도 잠시 쉬어갈 뿐이다.
쉬어가는 여유 있는
넉넉한 삶을 사유하며...
- 법정스님 -
겨우내 땅을 비워놓았기에 초록의 꿈을 펼치는 꽃.
무성했던 제 이파리를 벗어놓고 빈 가지로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
구름 한 점 없는 넓은 하늘이 품고 있는 이 대지에 생명이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