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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늘 법면이 문제다. 북쪽에도 법면, 남쪽에도 법면이 있다. 남쪽 법면은 무려 세 곳이나 있는데 경사가 다 다르다. 나무에 물을 줄라치면 흙이 다 쓸려내려 가서 법면에 심었던 '운용매화'는 두 번 다 실패를 했다. 경사 때문에 물이 고일 수 없으니 수분 부족으로 둘 다 가버렸다.
3년 전 황매화 20그루를 사다 법면에 심었는데, 이 친구들이 잘 자라주어 흙도 잡아주고 봄엔 우리집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주고 있다. 군락을 이루어 노랗게 피어나면,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감탄을 한다. 황매화 덕분에 봄이 더 기다려지고,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런데, 황매화가 빛을 발할수록 3구역의 개나리와 어울리지 않아 작년에 개나리를 죄 제거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백철쭉과 영산홍을 심었는데, 이 역시 뭔가 아쉬움이 있어 올핸 3 구역도 황매화를 심어 1, 2 구역과 통일해 보기로 했다.
"다음부터 이식할 일은 만들지 마"
남편의 또 그 잔소리......, 셀렉스와 싸우는 황매화를 캐내는데, 법면의 경사와 협소한 작업 공간으로 위험하고 불안하다. 여차하면 굴러 떨어질 수 있는 환경.
"심을 때 셀릭스와 싸울지 누가 알았냐고" 목까지 올라오는 대답을,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꿀꺽 삼켜버린다. 깊은 뿌리까지 간신히 캐내어 옮기는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내 키를 훌쩍 넘게 자랐다. 기특한 황매화....... 이제부턴 신나는 일만 남았다. 셀렉스는 숨통이 틔여 좋고, 이식한 황매화는 뽐낼 일만 남았으니......

이제 심는 것은 내몫, 법면이 좁고 위험해서 삽 대신 호미로 구덩이를 파낸다. 에고, 힘들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게다가 '근사미'로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개나리 뿌리가 깊어, 파내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개나리가 복병일 줄이야...., 오전에 마칠 일이 오후가 되어서야 이식 종료.
휴, 오늘도 힘들었다.

10여 년 전, 엄마가 경사면에서 일을 하시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친 후, 허리를 펴지 못하신다. 구부정한 할머니가 되었다. 나 또한 풀을 뽑다가 법면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다. 손바닥에 찰과상 정도였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아찔하다. 그래서 법면 작업은 가능하면 아예 계획을 하지 않는데 황매화 이식은 어쩔 수 없이 미루고 미루어진 숙원 사업이 되었었다.
황매화 4그루 이식 성공! 말이 4그루지 다발도 크고 작업 환경도 열악해서, 노동의 강도는 10그루 정도 심은 것만큼 컸다.
2023년, 첫 번째 숙원사업을 이루었다. 오늘도, 하루 종일을 밖에서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