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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월이 힘들었다.
긴 겨울이 참 지루했다. 2월이 지나고 3월, 경칩에도 난로를 피웠을 만큼 쌀쌀했는데도, 3월은 괜스레 마음이 분주했다. 나무 심으랴, 화단 만들랴, 매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이제나 저제나 4월을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정작 4월이 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울보다는 늦었지만, 여기도 웬만한 꽃들이 다 피어났다. 갑자기 올라간 기온으로 시차를 두지 않고 개나리부터 벚꽃까지 온갖 꽃들이 와글와글 피어났다. 은은한 꽃향기를 따라가니 옆집엔 미선나무가 하얗게 피어 있다. 은0씨를 닮아서일까? 주인처럼 우아하고 귀티 나는 꽃, 미선나무도 한 껏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작년 메모장을 살펴보니 주로 4월에 나무도 심고 꽃씨를 뿌렸는데 올핸 대부분의 일들을 3월에 해치웠다. 심고, 옮기고, 뿌리고, 만들기를 해마다 하는데도 새 봄이 되면 똑같은 일을 또 하고 있다. 봄만 되면 '비어 있는 땅에 채우기'를 하는데도, 왜 여전히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좋게 생각하면 뭘 좀 알아가는 것 같기도, 나쁘게 생각하면 끊임없는 욕심 탓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전자에 가깝다는 것.
주말에 한 번 더, 영하의 날씨라고 한다. 한 번도 거를 생각이 없는 꽃샘추위다. 그런데, 이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살 놈은 살고......' 운명에 맡겨야지. 은방울수선화가 얼었다가 살아나는 걸 경험하더니 이젠 나도 배포가 많이 늘었다.
아직도 뿌려야 할 꽃씨가 많은데, 남편이 도와주어야 가능한 '잔디 옮기기'가 지연이 되어 애만 태운다. 안개꽃, 종이꽃, 족두리꽃은 군락으로 심고 싶은데 말이다.
커피 타임 후엔, 꽃밭 투어를 한다. 한 바퀴 둘러보다 보면 늘 일거리가 생긴다. 계획 없는 일 중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풀 뽑기' 이게 제일 문제다. 다른 일을 계획했다가도 이게 본업이 되기 일쑤다. 오늘도 마찬가지. 잡초 역시 아직은 작고 여러서 여름보다 뽑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래서 더 열을 올리다 보면 모자도 안 쓰고, 어떤 때는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일(풀 뽑기)을 하고 있다. 이미 포기했지만 '거칠어진 손, 굵은 마디의 손가락'이 되었다. 기미와 잡티로 '얼룩진 얼굴'까지, 누가 들으면 엄청 불쌍타 할 일인데,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엄청 중노동이라 꺼리는 일 일텐데, 누가 하랬나? 풀 뽑기......, 자기 신세를 스스로 볶고 있다.
한바탕 풀과 씨름하고 나서야 '본업' 시작! 족두리꽃 씨를 뿌린다. 키가 큰 꽃이니 가능하면 뒤쪽에 심어야 하는데 블루베리와 세이지, 얼마 전에 심은 무궁화 고광이 걸린다. 작년까지는 나무마다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 주었는데, 한 번 해보자. 나무들 사이사이로 꽃씨를 뿌려주었다. 제법 많이 뿌렸으니, '모 아니면 도' 일 터. 제발 무더기로 싹이 나오는 '모'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은 루틴에서 벗어난 일이 하나 더 있다. 이웃이 맡기고 간 '마술 화분'. 지난 목요일엔 맨 포트에 맨 얼굴이었는데, 사흘 만에 싹이 돋아났다. "언니, 물 주고 비닐 덮어주면 돼요"해서 그렇게 했을 뿐인데 싹이 나와서 옥이가 오면 목소리 높여 '기세등등' 자랑할 일이 생겼다.


어느새 4월이다.
사과와 빵 한쪽, 커피를 챙겨 햇빛 쏟아지는 데크에서 싱그런 바람을 타고 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요즘 새로 얻은 최고의 행복이다. 풀 뽑고 돌 고르고 땅 파는 일은 늘 "아이고 힘들어"지만 틈틈이 행복을 가꾼다.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하대서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꽃이 깨어나면 내 행복도 깨어나길 바라면서...... 소소한 행복이 일상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