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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인연 7

요술공주 셀리 2023. 4. 21. 15:56

"중학교에서 만난 미술선생님 때문에 화가가 되었습니다."
긴 고민과 번뇌를 겪고 전시회를 준비했으니 와서 격려해 달라고 한다. '화가 김두영'의 개인전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 충청도 '공주'라고 한다. "어떻게 가지?" 운전도 못하지만, 차도 없다. 가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원주에서 단 한 번 있는 버스 타고 공주 가기, 아니면 서울 올라가서 다시 공주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어쨌거나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복주야, 두영이 개인전엔 아무래도 참석 못하겠어. 하필 그날이 아버님 작품 출고날짜야." 전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5월에 열리는 서울 전시회 관련 일이 겹쳐버린 것. 그런데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선생님, 제 대학후배가 원주에서 온대요. 아마, 그 후배가 선생님을 모시러 갈 겁니다." 아무래도 김두영 전시회엔 '갈 팔자'인가 보다.

'사진작가 김명국'씨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출발했으니 점심식사하고 계시면 12시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두영이도, 명국 씨도 왜 미리 점심식사를 하라고 강조하는지?...... 아침 식사한 지 두어 시간 만에 먹히지 않는 점심식사를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엄청 고압적이고 권위적일 거란 선입견 때문에 점심을 같이하기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다나???

제자가 보내준 사진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어떡하지? 이 사람과 오늘 6~7시간을 좁은 차 안에서 함께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덥수룩 기른 수염에 인상을 잔뜩 쓴 얼굴, 주름까지 많은 얼굴로 다소 험상궂은? 느낌을 주는 프로필 사진이다. 예술하는 사람 중에 수염 기르고 머리 기르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인상처럼 성격도 독특하면 어쩌나? 아휴, 오늘 하루가 걱정이구나.

"도착했습니다." 핸폰을 받고 마중을 나가는데, 훤칠한 청년 같은 사람이 겅중겅중 걸어온다. 그런데 털보아저씨가 아니라 세상천지에 순둥순둥 해맑은 아기얼굴이다. 우하하, 수염도 없고 주름도 없고, '선함'만 가득 담긴 얼굴이다.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동생네 한 번 구경하고 가시지요." 강을 품은 뷰 맛집, 동생네를 둘러보는데 김작가는 유난히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다. 사진작가의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좋은 경치라고 감탄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간은 감동과 즐거움의 연속, 오랜만에 나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 마음에 쏙 드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저는, 흙을 만질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풀을 뽑을 때두요. 봄이 되면 노랑연두, 연두, 밝은 녹색, 옅은 초록 등, 이 다양한 녹색의 잔치가 저를 소름 끼치게 합니다. 아침에 쏟아지는 봄 볕이 너무 좋아 하루종일 창가에 있고 싶고요. 밤 12시에도 꽃을 심는 답니다. 저는 삐뚤빼뚤 어눌해도 화장실 타일을 직접 붙이고, 시간이 걸려도 내 집을 하나하나 단장한답니다. 그래서 원주에 작고 낡은 집을 샀답니다.
말끝마다 감성이 묻어나고, 마치 시를 읊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가 어제 경험한 것을, 김작가 또한 엊그제 경험한 것처럼 똑 같이 말하고 있으니 공통분모의 대화가 오래 만난 지인의 수준, 그 이상이다.

"아침에 호미로 풀을 뽑았더니, 손톱에 까맣게 흙이 끼어서 씻고 왔어도 아직......, 허허허 " 수줍게 웃는다.
"어머나, 나도 어제 풀 뽑았더니 손톱이 까매져서 이렇게 손톱을 바싹 깎고 왔는데......, 호호호"
세 시간 만에 우린, 친구가 되었다. 아니, 내가 그러면 좋겠다고 했다.

제자의 개인전은 정치인과 교육자, 미술계 인사들로  '문전성시'. 머리 길고 수염난 사람과 남 녀 노 소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무엇보다 작품이 훌륭하고, 깊이가 있어 참 좋았다.
제자라고 말하지만, 삶의 깊이와 번뇌의 흔적들은 인생의 선배 같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화가 김두영, 사진작가 김명국, 시인 최복주, 많은 예술가와 저녁까지 함께하고 공주를 출발한 시간은 밤 9시,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김작가와는 12시에 만나 거의 하루 정도 함께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막냇동생 보다 더 동생같은 사람인 '사진쟁이 김명국'은 호미로 풀을 뽑고, 오늘도 내가 준 '으아리'를 집에 도착하면 심고 잘 사람이다.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을 제자 덕분에 알게 되어 참 좋다. "저... 선생님이라면 제 책을 다 읽어주실 것 같아서" 라며 트렁크 깊숙한 곳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내게 내민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끝까지 읽어야 할 숙제를 주고 갔으니, 열심히 읽어야겠다.

김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어 단풍나무와 할미꽃, 풍선초를 나누어주기로 했으니, 조만간 여기에 다시 올 것이다. 그 때에도 우린 똑같이 손톱 끝에 까만 흙을 묻히고 있을게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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