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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잤지만 일찍 일어났다.
동창의 햇빛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서다.
생각보다 빨리, 생각보다 더 멋지게 화단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깔은 잔디 zone 또한 깔끔하고 넓어 보여, 기존의 자갈밭보다 훨씬 우아해졌다.
남편도 기분 좋기는 마찬가지, 7시도 안 된 시간에 벌써 밖으로 나갔는지 침대가 비어 있다.
아침식사 하자마자 남편은 또 밖에 나가 잔디 작업을 마무리한다.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출입구) 역할은 우체통이 하고 있다. 집의 가장 초입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로 기둥을 만들었더니 4년 만에 부패해서(쓰러져서) 남편이 pvc소재로 바꾸어 주었다. 빨강 지붕의 우체통 아래엔 비비추를 옮겨심기로 했다. 역시 돌밭이어서 6그루 비비추를 심는데 호미면 되는 작업을 삽질과 함께 진행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쪼그리고 앉아하는 작업이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다. 빨강지붕과 흰색 집 아래 녹색 비비추가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룬다. 역시 기분이 좋다.
ok! nice! 화이팅까지 외치고 북쪽화단으로 올라갔다.
이제부턴 꽃범의 꼬리를 심는데,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햇빛샤워하기엔 오늘은 너무 강렬하다. 모자를 착용했지만 얼굴이 화끈화끈, 무덥다. 힘들다. 그런데도 세 개만 더 심으면 완성이니, 그대로 직진이다.
그런데, 핑그르르 어지럽다. 힘이 하나도 없다. 간신히 그늘의 의자에 앉았지만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지탱하기가 힘들다. 병원에 가야하나? 의사가 "햇빛아래에서 일하지 말라."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상하게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고, 머리가 지근지근 아프다. 남편을 불러 옆에 앉혀 놓고 머리엔 냉찜질, 배와 발엔 온찜질을 해본다. 혈압이 높아진 걸까? 쪼그리고 앉아한 작업 때문에 체한 걸까?
대부분 내 증상은 둘 중 하나인데, 갑자기 커억 트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계속 트림이다. 아, 급체로구나. 동생이 가르쳐준 배 마사지를 하고 남편에게 죽을 부탁 해서 점심식사를 했다. 소화제를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윗집 옥이가 전화를 했다. 쑥떡을 했으니 우리집으로 온단다. 옥이의 전화로 누워있던 자세를 이제야 바로한다. 참 다행이다. 소화제 탓인지, 잠 때문인지 두통이 사라졌다. 한결 가벼운 컨디션으로 옥이랑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병원에 가야하나? 생각하기 시작해서 두어 시간이 무척 힘들었다. 꼭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이 제일 힘들었다.
남편이 옆에 있어 위안이 되었고, 배 마사지, 안마의자, 적절한 휴식과 잠이 보약이 되었나 보다.
미련한 사람,
feel 받으면 무작정 직진만 하는 이 무대포를 어쩌면 좋니?
오죽하면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고 노래를 만들었을까?
오늘은 대체 왜 그랬냐고? 목표량을 설정한 것도 아니고, 더더욱 경쟁도 아니었잖아?
전원생활을 일처럼 전투적으로 하는 게 문제다. 알면서 제어가 안 되는 건 미련한 짓인데, 가끔씩 이 병을 되풀이하고 있다.
'비비추'와 '꽃범의 꼬리'를 옮겨 심고 갑자기 아픈 바람에 물을 주지 못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축 쳐진 아이들이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5시가 넘어서야 물을 주었다. 흠뻑 주었으니 밤새 힘을 내 줄거다. 잘 살아 줄 거다.
오늘 같이 덥고 뜨거운 날이 점점 많아질텐데 이만하길 다행이다.
뜨거워지는 계절에 앞서 미리 액땜을 했으니, 넌 오늘 계 탄 줄 알아라.
경종을 울린 날, 선두 제자리! selly 제자리!
제자리걸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오늘이다. 그래서 감사한 오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