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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 떨어진 연두색 열매가 눈에 뜨인 건 여름이 되어서다.
갸름하게 생겼는데, 작고 못생긴 얼굴을 한 이 것이 도대체 무슨 열매인가 궁금했는데, 요즘 귀하다는 '개복숭아'라고 한다. 어떤 명사에 '개'라는 접두사가 포함된 단어는 개떡, 개살구, 개꿀, 개철쭉, 개복숭아 등 우리 주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개'가 붙은 단어는 대부분 야생 상태이거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좀 다르다란 걸 알 수 있는데, 개복숭아 역시 복숭아와 닮았지만, 모양도 맛도 떨어지는 부족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 윗집 이웃이 '개복숭아 효소'라며 달달하고 새콤한 진액 한 병을 들고 왔었다. 처음 경험한 개복숭아 효소는 매실 엑기스 맛과 비슷해서 요리를 할 때, 김치를 담글 때, 설탕 대신 사용하곤 했는데 얼마 전, 빈 병이 되었다.
"언니, 개복숭아 따 가도 되지요?" 반장님 댁에 마실 갔을 때, 옥이는 반장님으로부터 "따가라"는 말을 들었다.
"나무가 여럿이니, 알아서 따가세요." 하는 반장님께, "저도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구멍에서만 맴돌 뿐 쉽사리 말을 못 하고 침을 꿀꺽 삼켰었다. 차마 "따 가겠다"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반장님을 알고 지낸 지는 수년이 되었다. 그러나 소통을 하게 된 것은 올봄, 성당 반모임을 통해서다. 반 모임으로 공식적인 만남을 이어 오다가 등산과 산책, 식사를 함께 하면서 가까워진 어느 날, 카톡 한 통을 받았다.
"개복숭아 필요하면 언제든지 따 가세요." 어떻게 내 마음을 아셨을까? "예. 감사합니다."
그러나, 쉽게 따러 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집 앞에 개복숭아를 따다 놓았어요." 반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햇볕과 복숭아 털로 무척이나 따가웠을 텐데 손수 따다 주시니,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보리수와 바이오체리 효소를 담아 보았으니 개복숭아 효소도 대충 담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 못 한 것 같다. 그 흔한 인터넷 공부를 먼저 했어야 했다. 대충 씻어 말린 후, 꼭지도 따지 않은 채 설탕만 들이부었다. 설탕이 부족해서 새로 산 설탕을 채우느라, 며칠 만에 효소를 완성했다. 오늘 마무리를 하려고 병뚜껑을 열었는데, 설탕물에 둥둥 떠다니는 벌레를 보았다.
"에구머니나" 대충 씻은 탓인가? 꼭지를 따지 않아 그런가? 이를 어쩌지?
버릴 수도 없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저 하얀 벌레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덜덜 떨면서 벌레를 잡아 버리는데, 우왕! 날더러 어쩌라고...... 여전히 떠다니는 벌레. 벌레가 한 두 마리가 아니다. 많다! 할 수 없다. 눈 질끈 감고 뚜껑을 닫아 버렸다.
다행이다. 주부는 주부인데 뭔가 부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주부 초단에게 접두사 '개'를 붙이지 않는 것이......'개복숭아' 는 있어도 '개주부'란 말은 없으니......
벌레와 함께 담은 효소는 3개월 후, 숙성한 다음에 보기로 한다. 복숭아 씨를 발라내려면 벌레가 또 나오겠지만 말이다. 맛있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