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삐뚤빼뚤 글쓰기

쉽고 당연한 일

요술공주 셀리 2023. 10. 31. 10:53

있기는 한 걸까? 쉬운 일.
어렵게 처리했던 일이, 어느 날 간단하게 해결된다면 그게 쉬운 일일까?
강도 높은 일의 반대가 쉬운 일일까?
암튼, 강원도에 내려와 살아보니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모든 일이 경험치인데 남들은 '쉽다는 일'이 나는 어렵기만 하다. 풀을 뽑는 것도 땅을 파는 일도 어렵고, 씨를 뿌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가벼운 노동'일뿐이라고 전원생활 선배가 말했지만, 노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윗집도, 옆집도 김장을 시작했다. 내일 하려던 김장을 얼떨결에 나도 시작하게 되었다.
배추와 무를 뽑고, 갓과 파까지 뽑고 나니, 어느새 밭도 비워졌다.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위해 붉은색 플라스틱 큰 통을 씻어야하는데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혼자서 옮기기엔 부피와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데, 그걸 나 혼자 하고 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김장을 계획했으나, 일정을 바꿨다. 주말에 오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그러자니 배추를 뽑고, 다듬는 일뿐만 아니라 옮기고 정리하는 일까지 혼자 하고 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줬어요."
동료가 나누어준 김장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 땐 그 동료가 무척 부러웠었다. "해마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걸요." 부모님이 늘 하는 일이라며 김치 받는걸 당연히 생각하는 동료였었다.

그런데, 그걸 직접 해보니 쉬운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다.
받는 한 사람은 1000원짜리 양말이지만, 10명에게 주는 사람은 1만 원을 써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 세 명의 자녀에게 김장을 나누어 주는 부모님은 네 배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 일이 어찌 쉽고 당연하단 말인가? 받는 도시인들은 해보지 않은 일. 그걸 알리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해보니 시골일이 절대로 쉽고 당연한 일이 아니더라. 손 가지 않은 일 없고 모든 일이 발품 없이 되는 일이 없더라. 씨 뿌리고 수확하기까지 풀 뽑아주고, 물을 뿌려줘야 하는 가하면, 엊그제 서리가 내릴 적엔 무가 얼까 봐 이불을 덮어줬었다. 때론 벌레도 잡아주고, 애기처럼 얼르고 달래줘야 자연도 결실을 내어준 다는 것을 안지 겨우 1년이 되었다.

올 김장 농사는 배추는 쪽박. 무는 대박이다.
배추는 어쩐 일로 키도 작고 속도 차지 않아 뽑고 보니 20 포기 분량도 되지 않는다. 무는 또 커도 너무 커서 배추보다 무겁다. 작다고 맛없고 크다고 맛없지 않기를 바라본다. 내겐 모두 소중한 직접 지은 농산물. 손 때 묻은 모두가 다 맛이 있기를 고대해본다.

파와 갓까지 뽑아 수돗가까지 손수레로 세 번을 날랐다.
휴우, 숨 한 번 크게 쉬고 내친김에 배추절임까지 go go! 이웃에게 배운 대로 통배추 반을 뚝 잘라 칼집을 내주고, 흰색 겉껍질 부분에 살짝 소금도 뿌리고, 큰 통에 배추를 담아 그 위에 소금물을 부어주었다. 골고루 절여지도록 무거운 통도 얹어주었다. 이제 시간이 해결사. 배추는 밤새 시간이 절여줄 것이다.
일단, 절임까지는 마무리.
손 가지 않은 일 없고 발품으로 진행된 일이 어느새 마무리라니 우와, 혼자서 해냈다는 기쁨과 보람이 찾아왔다. 아, 여기까지 쉽지 않았으나 사부작사부작 하다보니 할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욕심 내지 않고 무리만 않는다면 발품과, 손길과 함께 시간이 또 해결해준다는 걸 실감한 하루. 내일 김장도 손길, 발품보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삐뚤빼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과의 동거  (22) 2023.11.03
김장이다  (34) 2023.10.31
가을이 부른다  (36) 2023.10.28
눌노리, 그 이후  (22) 2023.10.25
단풍잎 손수건  (25) 2023.10.24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