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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라고?"
뮤지컬 제목이 빨래란다. 도통 상상이 가지 않는 단어다.
"유명한 작품이어서 꼭 가고 싶었어요. 제가 식사 멤버 7명 다 예매했어요."
세상에, 기특도 해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역시 젊은 사람의 센스다. 그리하여 우린 문0씨 덕분에 눈호강, 귀호강을 하게 되었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1년에 몇 번 하는 향수까지 치지직 뿌려주고 오랜만에 출근할 때나 입던 옷을 꺼내 입었다. 오후 5시 30분에 출발. 어둑어둑해진 도로를 달려 밤이 된 횡성에 도착했다. 얼마만인가? 무수히 많은 자동차 headlight. 서울에 온 듯 설레고 떨린다. 아주 오랜만에 도시의 향기를 힘껏 들어마신다.
7시 공연인데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공연장 옆에서 전시하는 수채화전도 감상했다. 그림을 보면서 전시회, 나도 그게 하고 싶어졌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2000년대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연상케하는 무대 세트만 보고도 찾아온 전율. 무대만 봤을 뿐인데 가슴이 콩닥콩닥, 마음이 찌릿찌릿 뭔 일일까? 이 떨림은......
강원도에서 작가의 꿈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 나영은 단칸방에 세를 살게 된다. 서점에서 일을 하는데 녹록지 않다. 서울살이, 세상살이하면서 겪는 애환을 노래와 연기로 잘 엮어낸 수작이다. 적당한 위트와 재치 그리고 감동까지 겸비한 보기 드문 걸작이다. 몽골청년 쏠롱고와 필리핀 노동자 마이클, 나영의 일터 서점 사장과 직원들의 달콤 쌉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방적인 관리자와 약자인 노동자와의 관계도 포함되었고, 나영과 쏠롱고의 사랑 이야기도 눈길을 사로 잡는다. 구두쇠 집주인 할머니와 그녀의 장애자 딸. 세 들어 사는 희정엄마의 연기도 볼 만하다. 지난한 서울살이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이 있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따뜻한 인간미도 포함하고 있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게 한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빨래'라는 매개를 통해 희망을 준다는 스토리도 참 잘도 풀어냈다.
그래서 재미 있었다. 감동까지 있었다.

"고민은 빨래처럼 탁탁 털어버리고, 슬픔은 빨래처럼 말려서 날려 버려라."는 대사가 가슴에 콕 박혀왔다. 가난과 슬픔과 역경을 빨래로 승화시킨 오랜만의 작품을 관람했다.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때론 박장대소를, 때론 가슴 뭉클 눈물도 찔끔하면서 본 뮤지컬 빨래. 제대로 힐링했다.

2005년에 시작한 '빨래'는, 공연 횟수와 관객 수. 참여한 배우의 양도 대박이다. 극본 상과 각종 상을 섭렵했고, 관람 후기까지 칭찬 일색이다. 한 작품을 80번 관람했다는 사람도 있으니 대작임에 틀림이 없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공연을 했고 현재도 여전히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단다.
그러나, 글쎄다.
개인적으론 횡성(문화예술화관)에서 본 공연이 최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중에 빨래를 직접 짜는 장면, 툭툭 털어서 너는 장면과 실제로 빨래를 하는 장면이 실감 났으며, 중간에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 공연 중인 작가에게 sign받는 재미까지 제공했으니, 촘촘하고 감동이 있는 각본과 다이나믹한 음악, 능청스럽고 노련한 배우들 (윤진솔, 노희찬, 강나리, 김송이, 이승헌, 안두호, 박정민, 서태인)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특히 배우 강나리의 집주인 할머니 연기가 단연코 최고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