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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초겨울의 일기2

요술공주 셀리 2023. 11. 14. 15:01

깨우는 사람 없으니 오늘도 잠꾸러기.
아버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기상.
두꺼운 점퍼를 입으신 아버지가 콧물을 뚝뚝 흘리며 "보일러 고장 났어." 하신다. 한 걸음에 달려가봤으나 알아야 면장을 하지. 보일러 업체에 전화를 했으나 오후에나 올 수 있단다.
며칠 동안 추위에 고생하셨을 부모님께 너무너무 죄송할 뿐.

동생네는 심야보일러를 설치해서 사용한 지 십수 년이다.
그동안에도 여러 번 수리를 했다는데, 오늘 공사는 대공사란다.
물탱크의 맨 위 센서가 너무 낡아 물이 샌 것이 원인이란다. 누수된 물이 아래 컨트롤 박스와 센서까지 흘러 들어가 문제가 커졌던 것.
차단기가 작동을 했으니 망정이지, 누전으로 큰 불이 날 뻔했다고......

휴지 달라, 걸레 달라, 뭔 드라이기를 갖다 달라 주문도 많은 보일러 수리로 오후 시간이 훌러덩 지나갔다.
앗, 오늘이 아버님 기일인데?

아버님과 첫 만남은 학교에서다.
대학교 2학년. 처음 뵌 교수님은 체구가 작고 섬세해 보이셨다. 그렇게 3년을 가르쳐준 은사님이셨는데 대학 졸업 후 1년 뒤에, 시아버님이 되셨다. 결혼을 하고 5년여를 따로 살다가 한 지붕 아래 삼대가 서울에서 함께 살았었다. 그림 그리는 며느리라고 많이 아끼셨는데 며느리는 교직에만 관심 있었고, 돌아가신 후에야 겨우 붓을 잡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아버님의 후계자가 되길 원하셨지만, 아무것도 아버님 뜻대로 해드리지 못했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굴전과 고기, 버섯전골, 만두 등을 준비했는데 최애 음식 생선회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사 음식이 너무 초라한 데다 아들이 출장 중이니 며느리 혼자 지내는 제사.
촛불과 고상을 챙길 때부터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왜,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는지 성가를 부를 때도, 기도를 드릴 때도 훌쩍훌쩍. 죄송해서 훌쩍. 보고 싶어 훌쩍. 제사인지 눈물바다인지......
그래도 향도 피우고, 헌작도 해 드렸으니 기뻐하셨을 게다.
아버님, 은사님! 사랑합니다. 그러나 택도 없다. 부족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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