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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이라고 얕잡아봐선 안된다. 내 집 가까이에 있어 그렇지, 550 고지에 이른다. 제법 높고 웅장한 산이다. 버섯과 고사리 등 온갖 산나물의 보물창고여서 봄엔 동네사람들의 참새방앗간이 된다. 봄이면 산붓꽃과 으아리, 처녀치마 등 야생화가 천지인데 엊그제 내린 눈으로 산천초목이 눈 밑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도로엔 이미 눈이 녹았는데, 5분만 걸어가면 다다른 산 입구부터는 여전히 눈이 쌓여있다. 뽀지직뽀지직, 뿌드덕뿌드덕. 뽀드득뽀드득 신발크기와 사람의 몸무게에 따라 눈의 목소리도 다 다르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사람 발자국에도 이렇게 반가움을 표현할까? 찾는 이는 오직 우리 다섯 명. 설국 아침의 설산엔 우리들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로 베토벤의 합창소리가 울려 퍼진다.

휴~, 평소보다 걷는 속도가 쳐진다. 눈 깊이만큼 발자국이 무겁다. 헉헉 숨이 차 온다. 초입부터 쉬기로 한다. 작은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이 보인다. 우리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우리 집에 늘 응가를 하는 들고양일 것이다. 세상에 고양이도 먹이를 위해서는 등산도 하는구나.
산등성이엔 눈이 없다. 소나무 밑이기 때문이다. 나무 밑엔 온통 낙엽이 쌓였는데 물기를 머금은 낙엽더미 역시 미끄럽다. 살짝 얼어붙은 살얼음 또한 위험천만이다. 하산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니, 무릎이 아프다.
휴우~~, 가쁜 숨을 쉬기 위해 여러 번 멈춘다. 그제야 설산의 자태가 선명하게 보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 밑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 눈이 오고 이틀이 지나는 동안 쌓인 눈이 녹았어도, 설산은 여전히 아름답고 웅장하다. 발아래 저 깊은 곳까지 내려다 보인다. 100m 높이의 위엄을 하얀 눈 때문에 실감을 한다.

헉헉, 쑥~쑥 빠지는 눈길의 하산 역시 쉽지 않다. 여전히 눈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눈은 발밑에 가 있고, 등산 초기에 목소리 높던 일행의 말소리가 이제 들리지 않는다. 평소 1시간이면 완주하는데, 이미 30분을 초과했다. 천천히 가고 있을 때, 앞서간 막내가 소리를 지른다.
"누가 왔다 갔어요. 눈 위에 글을 썼어요."
- 이거 보신 분 행복하세요 -
- Happy new year -
우리가 등산을 하는 걸 아는 사람, 산 입구에 사는 젊은 부부 문0씨다. 오구오구 어떻게 이런 생각을......
그래서 우리도 답장을 보냈다.
- 고마워! -
- 같이 행복합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