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삐뚤빼뚤 글쓰기

제군들이여, 사열 준비

요술공주 셀리 2024. 2. 18. 14:26

동생네는 쥐 때문에, 우리 집은 노린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쥐 소탕작전에 몰두한 제부는 폐렴으로 입원까지 하고...... 난, 멀리서도 노린재를 탐지하려고 개코가 되었다.
"개미와 귀뚜라미를 소탕할 수 있는 특수 살충제를 뿌리면 효과가 있어요." 하는 이웃의 조언을 듣다가,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햇볕이 좋아 꽃밭을 둘러보다 튤립 새싹을 보았어요."  벌써 지난주의 일이다. 그래서 이웃은 지난주에 꽃밭의 낙엽을 걷어냈다고 한다.
어느새, 낮엔 경량패딩만 입고도 따뜻한 날씨다. 그래도 그렇지, 강원도의 2월에 새싹이 나왔다고? 그 길로 우리 집 꽃밭에 나가봤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취침 중이었다.

그런데, 나도 오늘 시작종 소리를 들었다. 띠리리리리~ 띠루리루디~. 학교에서 매일 듣던 차임벨 소리를 여기서 듣게 된 것이다. 남쪽 꽃밭에 수선화가 싹을 틔웠다고 신고를 했다. 수선화가 낙엽 밑에서 뾰족한 초록 새순을 뽀로롱 틔운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새순을 마중하려고, 맨손으로 나뭇가지를 걷어내고 말라비틀어진 과꽃가지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낙엽에 가려졌던 모싯대와 눈꽃이 인사를 하고, 석축패랭이도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날씨 덕에 포슬포슬한 흙이 이불이 되었나 보다.

제군들이여, 헤쳐 모엽!
1중대, 나무들~ 병꽃은 좌로 2보 이동.
블루베리는 1대대에서 2대대로 전출 준비.
고광나무는 윗 밭으로, 과실수는 아랫밭으로 이동. 실시~
중대장인 난 이제부터 큰 일을 해야 한다. 겨우 내 빼곡하게 적어놓은 '2024 봄맞이 작업 계획표'대로 작업을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남쪽의 병꽃은 북쪽 화단으로, 고광 역시 북쪽으로, 블루베리와 사과 등의 과실수는 아래밭으로 이식을 해야 한다. 얼었다 녹으며 와르르 무너진 축대도 보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돌멩이도 날라야 하고......, 아이고 할 일이 태산만큼 많다.
이 많은 일들을 언제, 다할 수 있을까 싶다.

수선화 새싹 때문에 시작한 작업은 풀 뽑기로 이어지고, 급기야 백합과 족두리꽃, 백일홍과 꽃범의 꼬리의 마른 대공을 뽑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계획하지 않은 충동적인 일이라서 장갑도 없이 작업하다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그제야 장갑을 끼고 무궁화와 사과나무, 홍매화를 전지 하고서야 집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 일이 생기면 식사도 잊고 직진하는 이놈의 성격을 올봄엔 고쳐야 할텐데......
손톱 밑의 흙가루를 털어내며 다짐을 해본다.

시작종이 울렸으니, 손과 옷에 흙가루 범벅이겠지. 손톱밑은 까맣게 때가 끼어있을 테고, 옷마다 덤불과 잔디가루를 붙이고 다닐 텐데, 어쩌면 우아했던 겨울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작업하던 그림과 뜨개질도 서서히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무 중대, 붓꽃 소대, 달맞이꽃 제군들이여! 사열 준비~~ 봄꽃부터 1열 종대로 헤쳐 모엽!
우렁찬 중대장의 목소리가 꽃밭 가득 퍼져나갈 봄이 시작되었다. 종종걸음으로 꽃밭을 누비고 다닐 일이 만만하지는 않아도, 마음은 이미 4월 중순이다. 어떤 꽃이 제일 먼저 나올까? 생각만해도 설레는 일이다.
 

'삐뚤빼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쁜 날, 잔치로구나  (4) 2024.02.21
기다림 2  (13) 2024.02.19
봄꽃 서리꽃  (16) 2024.02.17
힘든 하루  (14) 2024.02.15
다시 일상  (15) 2024.02.14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