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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약속을 지킨 요정들

요술공주 셀리 2024. 5. 17. 14:05

"애들 온대?"
"글쎄, 연락이 없네."
그럼 그렇지. 어떻게 또 온다고 하겠니? 지난 주에 다녀가면서 꼬마 요정이 "꼬꼬 할미, 우리 다음 주에 또 올 거야." 하며 아림인 바이바이를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주일 만에 강원도에 또 오겠어? 하면서도 난 수요일부터 "애들 온대?"를 동생에게 수도 없이 질문했었다.

"언니, 애들 온대."
"아니, 정말로 온대?" 반신반의하면서도 얼굴은 이미 자동 미소. 아림이 찾던 바나나와 치즈가 있는지 냉장고를 열어보고 청소를 시작한다. 조카며느리는 내가 담은 김치를 맛있다고 했겠다? 배추 한 포기를 사 와 뚝딱 겉절이도 만들었다.

어느새 8년. 동생에겐 손녀지만, 내겐 요정 같은 아림은 꼬꼬할미를 너무 좋아한다. 꼬꼬할미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는 동생의 말이 믿기지는 않지만, 아림이 날 좋아한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 오늘도 동생과 통화하면서 제일 먼저 꼬꼬할미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꼬꼬할미에게 딱 기다리라고 해." 했다는 아림에게, 나도 엄청 공을 들였었다. 유난히 예민했던 아림은 적게 먹고, 잠도 잘 자지 않아 체중도 키도 작아 가족들에게 걱정을 줬었는데, 그런 아림은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랐었다. 칭얼 대는 아기에게, "아림아, 꼬꼬닭 보러 갈까?"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고 안기곤 했는데, 닭을 자주 보여준 덕에 붙여진 별명이 '꼬꼬할미'다. 그리고 꼬꼬할미는 아림이 원하면 무조건 OK, 웬만한 요구는 200% 들어주곤 했으니 마음 가는 데 실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4년 터울인 동생 아정이는 태어나서 한 달을 입원했었다. 우유만 먹는데도 계속 설사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신생아. 우유가 맞지 않아 그렇다는 '유당분리증'이란 걸 늦게 발견해서 아이가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다. 언니를 닮아 청산유수인 아정인 어린이집에서 똑순이로 유명하다. 기저귀를 찬 요정이다.

체구가 작았던 아림과, 갓난아기 때부터 병원을 찾았던 아정인 자라면서 먹방요정이 되었다. 둘 다 고기를 좋아하는데, 아림은 소고기 2인분은 거뜬히 해치우는 어린이가 되었다. 김치도 잘 먹고, 시금치도 잘 먹고 둘 다 푹 끓인 곰국을 좋아한다니, 입맛은 이미 어른. 안으면 둘 다 포동포동한 아기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제 이천에서 사 온 판다를 정원 오미자나무 밑에 앉혀 놓았다. 판다는 어쩌면 저렇게 손주 다민이를 닮았을까? 한 팔을 들어 올린 모양이 꼭 '안녕하세요?'를 하는 것만 같아 판다를 볼 때마다 손주가 많이 많이 보고 싶다. 고이 보관했다가 손주가 오는 추석에나 꺼내려다 두 공주님을 위해 오늘 꺼내 놓았다.

공주님들은 4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1시간 반이면 도착하겠지? 아이고 바빠라. 쌀을 씻고 반찬을 준비하는 동생 옆에서 나도 괜히 들썩들썩. 설레는 마음에 바람까지 불어오니 이 또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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