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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세요.
"그래도......"
"그럼 감자만..."
참, 내원. 내 마음을 그리도 모른단 말이냐? 농약 안치고 청정 지역에서 자란 유기농 농작물을 아들 내외에게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을 이리도 몰라주는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새우를 볶고, 더덕을 굽고, 깻잎조림과 오이지무침 1인분씩만 쌌다. 감자는 가져오라 했으니, 충분히 넣고 아침에 딴 오이와 가지, 양배추도 담았다. 오이고추와 풋고추, 당근, 상추까지 집어넣으니 쇼핑백 하나가 가득 찬다.
오늘은 서울 가는 날. 과천현대미술관에 볼 일이 있어서다. 지난 봄에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 아버님(고 이기원 화백) 작품 4점을 전시했었다. 그중에 '일월'이란 작품을 미술관에서 소장하겠다기에, 그 작품을 배달하러 간다. 작품 운송차량이 일찌감치 강원도에 도착을 했다. 운송업체 사장님은 오래된 구면이다.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와 오이 등으로 만든 반찬과 청국장으로 함께 점심을 먹고 우린 과천으로 출발했다.
40여분의 계획된 과정을 마무리할 때쯤,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일정 다 마치면 제가 그리로 갈게요." 오늘은 호사스런 날이다. 과천까지는 작품 운송차량으로, 서울엔 아들차량으로 이동하니 무거운 짐을 들고 걷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마중 나온 아들은 잔소리부터 늘어놓는다. "세상에, 가져오지 말랬는데 한 보따리네. 아이고, 무거워라. 암튼 엄마의 고집이란......"
"네가 데릴러 나온다기에. 사돈댁 드리려고......" 입에선 변명이지만, 마음은 뿌듯하기만 하다.
반년만이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는 치과와 병원이 먼저다. 예약한 스케일링을 하고 내과에 들러 미리 처방한 소화제를 건네받으니 저녁이다. 육아에 지친 아들네는 대부분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한단다. 그러다 보니 며느리는 집밥을 선호한다고. "거봐라, 내가 잘했지?" 집에서 싸 온 밑반찬을 식탁에 차려놓으니 한상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오이지무침도, 더덕구이도, 깻잎조림도 다 맛있다. 그런데 아들 내외는 포장해 온 찹쌀 탕수육이 맛있다면서 내 반찬엔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 반찬! 아들 말대로 아무래도 과했나 보다. 그제야 실감을 한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 했던가?
"어머님, 엄마가 이유식 재료를 다 준비해 주시는데, 당근이랑 감자 잘 먹을게요." 한다. 역시 내 며느리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오, 다행이구나. 쓸모가 있다니......"
채소와 생선, 고기며 이유식 재료를 사부인이 다 갈아서 준비해 주신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바리바리 싸 온 채소와 반찬이 드디어 위로를 받는다.
"할머니 어디 있지?" 하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는 손주. 본 지 한 달 만에 또 재롱이 늘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가까워지는 손주가 이제 할머니를 알아보고, 소통을 한다. 그런 손주와 1박 2일을 함께 했다. 문화센터에서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도 경험하고, 점심도 함께 했다.
사양하는데도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는 아들네 덕분에 이 번 나들이는 편안하고 쾌적했다. 온다던 비가 참아준 이틀.
아들의 잔소리를 제외하곤, 하늘도 땅도 다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