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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잔소리는 싫어

요술공주 셀리 2024. 7. 17. 15:16

냉장고를 정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 또 냉장고를 털어본다. 아들의 잔소리 때문이다.
"엄마, 냉장고에 쓸데없는 게 너무 많아요."
"냉동고에도 버릴 게 천지예요."
아들이 처음 그렇게 말할 땐 허허허 웃으면서 들었다. 녀석, 세심하단 말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한 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니 은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꼴랑 자취 몇 년 해 본 녀석이 감히 살림 고수한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엄마, 소고기 뭇국을 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냉장고에 있어요?"
"카레라이스도 먹어야 하는데, 왜 자꾸 새 음식을 만드는 거예요?"
"여름엔, 모든 음식을 다 냉장고에 보관해서 그렇지."라고 했지만 아들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부모님 식사를 챙겨드린다고 소고기 뭇국을 끓였는데 엄마가 갑자기 교회에서 미역냉국을 가져오시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나 버린 것인데, 일일이 설명하기 뭣해 그냥 뒀더니 이 녀석의 잔소리가 작난이 아니다.

"거 봐요, 맛이 없잖아요." 점심으로 소고기뭇국을 냈는데, 냉장고에서 며칠 묵은 국은 나도 먹기 싫었다. 딱히 표현하기 뭣한 것이 상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신선한 맛도 아닌 아주 애매모호한 맛이었다.
냉장고엔 아직 카레라이스도, 초복에 넣어둔 영계백숙이 있는데, 이걸 먹을 때도 아들은 잔소리를 또 쏟아낼 텐데......

냉장고를 여니, 켜켜이 쌓아둔 음식이 한가득이다. 뒤편에 있는 용기엔 뭐가 있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 용기 하나하나를 꺼내놓고 보니 아들의 잔소리가 이해가 간다. 작년에 넣어둔 보리수잼과 오디잼. 김치찌개라도 해야지 하고, 아까워 방치? 한 묵은지 통. 된장과 고추장. 새우젓 통 2개 등 오래된 것도, 정리해도 될 여러 가지가 또 보인다. 오래된 김치와 아까워서 보관한 몇 가지 음식을 버리고, 2통의 새우젓을 한 통에 옮겨놓으니 냉장고에도 여유가 생긴다. 
참기를 잘했다 싶다. 아들에게 "너나 잘하세요." 냅다 화를 내려다 목구멍에서 삼키기를 잘했다고 혼잣말을 한다.

살림을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버리지 않고, 아끼고, 나름 미리미리 챙기는데도 여전히 구멍이 생긴다. 난 아직도 멀었나보다. 
갑자기 시어머님이 생각이 난다. 일하고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계신 어머니였다. 집안일이 눈에 보일리 없던 시절. 딱히 할 일 없어 보였던 어머님이 이제야 생각이 나다니......
대한민국의 주부들이, 이웃의 주부들이 달리 보인다.
당신들, 묵묵히 흘러 가는 강물이었군요. 요란하지 않고 말없이, 물 밑에서 자갈을 모래로 만들고 물고기의 안식처를 만들어 주는 강물 같은 존재. '꾼'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집에 있으나, 손과 발이 이렇게 바빠야 '살림꾼'이 된다는 것을......
 
뭐? 살림의 여왕?
김치 좀 담고, 밑반찬 좀 만들었다고 어깨가 뿜뿜했었는데 "아이고, 아니옵니다." 깨달은 날.
아들의 잔소리가 쓴소리가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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