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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두 집 살림

요술공주 셀리 2024. 7. 14. 09:07

콩콩콩,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가 쪽지를 놓고 가셨다.
"우리. 주방 전기 고장."
참 시크도 하셔라. 얼마 전에도 아버진 쪽지를 들고 오셨었다. 그땐, 가스레인지와 세탁기가 고장 났다고 했다. 솜씨 좋은 남편이 이를 잘 해결했었다.



어디가 어떻다는 거지? 동생집에 가서 주방의 냉장고와 세탁기, 가스레인지를 확인해보았으나 이상이 없다. 그래서 주방의 불을 끄고 집을 나오려는데, 스위치 작동이 껌벅껌벅. 아, 스위치가 문제였다. 접촉불량. 그러나 잘 접촉이 되면 불이 켜지니 "이 정도면 뭐."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하자, 남편은 득달같이 동생집으로 직진. 한 바퀴 돌아보더니, 큰 일 날뻔했다고 한다. 스위치에서 스파크가 일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불이 날수도 있다고......
남편은 창고를 뒤져서 스위치를 찾고 몇 가지 연장을 챙겨 동생집으로 가서 열일을 했다. 금손을 거친 주방은 이상 없음, 영업 종료다.
남편이 열일하는 동안, 난 청소를 했다. 노인 두 분이 사시는 공간인데도 늘 먼지와 모래 알갱이, 설탕 부스러기 등 며칠만에 생기는 쓰레기를 자주 쓸어내야 한다. 언제부턴가 세탁기도 내 차지. 아버지가 하시던 설거지도 요샌 휴업 중. 슬그머니 딸에게 넘기셨다.



늘, 엄마가 문제다. 보리수 효소를 담고 나서도 남은 보리수가 아깝다고 한 바가지 따놓으셨다. 그런데 따 놓기만 하고 단도리를 하지 않아 벌레가 새까맣게 날아와 앉았다. 새콤달콤한 냄새를 맡고 찾아온 쉬파리 떼를 날려 보내느라 한참을 고생한 적이 바로 엊그제다. 오늘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교회에 가셨다. 욕실에 물 틀어놓고 외출하기. 안방에 불 끄지 않고 외출하기는 뭐 늘 있는 일. 어젠 누구에게 얻어왔는지 팥씨를 또 그릇에 담아놓으셨다.
앗. 쥐! 땅콩과 온갖 곡식을 좋아하는 쥐다. 엄마가 챙겨?놓은 온갖 곡식으로 작년 가을에 거실에 쥐가 서식했었다. 이 기억이 나서 부리나케 응급조치를 했는데, 하필 일회용 장갑.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교회에 다녀오시는 모습이 포착됐다. 시골 교회에선 신도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데 부모님은 늘 교회에서 식사를 하고 2부 예배까지 보고 오신다. 헤레나 언니가 따준 황도 복숭아를 썰어 부모님을 맞으러 갔더니, 엄만 또 교회에서 음식을 싸 오셨다. 오늘은 미역냉국이다. 지난주엔 아욱국을 싸 오셨다. 반찬과 도시락, 온갖 떡을 싸달라 해서 가져오시니 늘 음식이 넘쳐나서 이를 해결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엄마, 제발 음식 좀 그만 싸오세요."
"난 너 먹으라고......" 할 때, 띵가딩가 띵가링 ~ ♪ ♬ ~, 아들이 영상통화를 신청한다. 고맙기도 하지, 외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번갈아 가며 증손주를 반기신다. 미소가 번지는 두 분의 얼굴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아들, 서울 갈 때 농사지은 채소랑 밑반찬 좀 가져갈까?"
" 아뇨. 엄만 힘들고, 우린 잘 안 먹으니 가져오지 마세요."
"그래도, 장마에 채소값 비싸다는데......"
"괜찮아요. 며느리가 육아에 지쳐 주로 시켜 먹으니, 사양할게요." 한다.
쳇, 귀한 유기농 채소를 갖다 준다는데 사양이라니...... 으이그, 난 왜 속이 상하는 걸까?

엄마가 싸 온 오이냉국을 조용히 들고 와 냉장고에 넣었다. 아들에게 더 먹이려는 나와, 딸에게 주려고 음식을 싸 오는 엄마가 뭐가 다를까? 피장파장. 후후후,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저 시큼한 미역냉국을 난 대체 몇 끼를 먹어야 하나?를 생각하니, 아이 셔...... 그새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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