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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토끼네 잔치

요술공주 셀리 2024. 7. 12. 11:33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남편과 아들의 흔한 질문이다. 더위에 지친 이때는 입맛도 떨어지는 시기. 주부라면 오늘은 뭘 해 먹지? 를 수도 없이 생각하는 여름이다.
배달이 안 되는 시골. 마트가 가깝긴 하지만 마트에 가려면 자동차가 필요한 시골이다. 그래서 난, 내 텃밭을 마트로 만들어버렸다.

그땐 왜 그랬을까?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면서, 왜 그리 바쁘고 힘들었을까? 40년 넘게 워킹맘이었던 난, 내 바쁨때문에 가족의 식탁은 늘 빈약하고 가난했었다. 아니, 고기와 생선이 많았으니 그 반대였을까? 시부모와 함께 살았던 한 때는 김치와 국, 나물반찬이 풍족했었다. 그런데 분가 후엔 아들이 좋아하는 나물도 해주지 못하고 김치는 언감생심, 담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리는 언제나 부담이고 내키지 않는 일이었으니 돈은 들지만, 요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손쉬운 육류를 식탁에 자주 올렸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은 유난히 육류를 좋아한다.

어젠 마늘장아찌와 양파장아찌를 만들었다. 처음 만들다 보니 1.5kg 정도 되는 깐 마늘은 생각보다 적었고, 간장소스는 생각보다 많았다. 꿀병 2개를 준비했으나, 마늘장아찌는 한 병도 다 차지 않았다.
"언니, 이럴 땐 어떡하죠?" 묻기를 잘했다. 언니의 조언은 남은 간장에 양파를 썰어 넣으라는 것.
이 또한 헤레나언니가 해결해 줬다. 그래서 덤이 생긴 양파장아찌. 양파는 텃밭에서, 아이디어는 이웃에서 얻었다.

휴~, 한식은 여전히 어렵다. 그것도 채소로 만드는 밑반찬은 손도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늘 까기도 그렇고, 깻잎을 따고 씻는데도 오래 걸렸다. 청양고추와 파, 양파 등을 포함한 양념장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워킹맘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 그나마 요리에 관심이 생긴 지금, 열심히 도전하고 재미있게 실천하고 있다.

내가 키웠으니 약은 안쳤지만, 장마에 선녀벌레가 날아다녔던 찝찝한 깻잎은, 식초에 담가 1차 세척을 해주고 일일이 흐르는 물에 씻어주었다. 물기를 뺀 150여 장의 깻잎을 도톰한 무를 깔고 양념장을 얹어 푹 쪄주었다. 점심에 먹을 요량으로 서둘렀는데, 식탁에 오른 깻잎 조림은 대실망. 짜고, 달고 질겼다. 작년에 사용하던 양조간장이 부족해서 국간장을 사용했고, 대신 설탕을 넣은 원인이 고스란히 맛에 반영된 것이니 새삼, 정확하고 계량된 레시피의 중요성을 또 깨닫는다.
"언니, 이럴 땐 어떡하죠?" 이 번엔 깻잎 조림의 스승, 그라시아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그릇에 양파를 넉넉히 넣고 약불에서 푸~욱 쪄보라." 한다.

으쌰으쌰, 양파를 썰어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깻잎 졸임은 그러나 기대만큼 소생하지 못했다. 이미 짠기가 밴 깻잎은 엉성한 매직이 통하지 않았다. 다만, 질긴 식감이 약간 부드러워졌을 뿐......
할 수 없다. 텃밭으로 내려갔다. 강원도 특별시 농삿군 텃밭면 쉽사리 토끼백화점. 난 이 백화점의 VVIP다. 백화점을 통째로 차지한 손님이 양배추와 토마토, 오이고추와 청양고추를 사고, 깻잎과 상추, 가지와 오이, 양파까지 주문하니 식탁으로 배달해 주는데 5초도 안 걸렸다.

공수한 재료로 만들 오늘 저녁 메뉴는 상추쌈과 양배추쌈, 고추장에 찍어먹을 풋고추와 오이, 오이지무침과 깻잎조림, 감자조림과 가지나물이다. 아, 호박을 썰어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도 있었지?
풍성한 식탁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았더니, 제일 먼저 식사를 예약한 것은 토끼가족.
그러나, 딱 한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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