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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복 터진 날

요술공주 셀리 2024. 7. 15. 13:16

사람들이 덥다, 덥다 해도 강원도 산골짝에선 실감이 안 가는 단어였다. 여기선 아침저녁엔 긴 팔 옷을 입는다. 밤에 창문을 열면 추워서 이불을 끌어 덮어야 한다. 그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여기도 오늘 낮엔 왜 이리 덥고 습한지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닫고 있다.

점심 나절, 마을회관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복날이라서 어르신들께 백숙을 해 드리는데 부모님 몫을 챙겨놨으니 와서 가져가란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초복이구나. 회관에 도착하니, 젬마와 그라시아 형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동안 자주 뵈었던 낯익은 어르신께서도 반가워해주신다. 가마솥에서 꺼내준 영계백숙 두 마리가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형님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챙겨주신 백숙. 몇 년 전엔 없던 일이다. 젬마형님이 부녀회장이 되면서 이렇게 챙겨주는 것 같다. 고마우신 분들, 집까지 걸어오는데도 들고 오는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

햇볕 있는 오전에 빨래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오후 되면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빨래를 걷고 있을 때, 이 번엔 윗집이다. "오늘 저녁은 저희 집으로 오세요"라고 문자가 왔다.

해가 지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하는데 모든 사람의 손에는 음식이 들려있다. 누군가는 닭을 삶아오고, 옥이는 소라 무침과 장어를, 젊은 부부는 아이스크림을, 그리고 수박까지 4 가족은 모두 초복에 어울리는 음식을 담아왔다. 초복 모임이었을 뿐인데, 넘쳐나는 음식으로 우린 복이 터졌다. 1차로 닭다리를 뜯었고, 2차는 초고추장에 버무린 소라무침을, 3차로 장어구이를 먹었다. 위대하지 못한 난 2차전에서 이미 넉 다운. 그런데도 수박과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박 터진 웃음덕에 술술 들여보냈다.

젊은 문0 씨가 구운 장어는 오래 구웠어도 어설픈 맛. 구이 고수가 구운 장어는 전문가의 맛. 고기는 센 불에서 빨리 굽는 것이 맛있다는 특급 노하우를 오늘 또 배웠다. 전원생활에서 필수인 숯불구이 또한 노하우가 있었다는 것. 수박 먹는 법도 아이스크림 먹는 법도 세대차이가 있고, 사람마다 다 달라서 그것 때문에 서로 깔깔, 껄껄 웃음도 넘쳐났다.

오늘은 초복을 핑계 삼아 모이고, 많은 걸 함께 나눈 복 터진 날. 이웃 사랑이 터진 날이다.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 그의 이름도 '투게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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