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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일요일에 화장하는 여자

요술공주 셀리 2024. 7. 28. 09:57

"콜라겐을 지켜라.
피부노화의 주범, 자외선을 차단하라.
수분을 공급하라."
아침부터 우리 부부는 TV앞에 집중했다. 마치 콜라겐 제품을 홍보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고 건강관리 잘하라는 내용 때문에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마트도 갈 수 없던 내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스트레스로 생긴 고혈압과 극심한 만성 위염 때문이었다. 툭하면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니 만사 귀찮았던 때. 화장과 옷매무새 보다 아프지 않은 건강이 우선이었다. 50대 후반에 외모에 대한 신경을 꺼버렸으니 나이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했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매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 없어짐에 힘들 던 때. 얼굴도 무방비, 옷차림도 신경을 꺼버린 것이다.

어버이날 선물로 아들이 모자와 썬 크림을 사 왔다. 그러면서 "매일, 꼭 바르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러마." 영혼 없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60대 초반까지 출근을 하면서 나름 화장도 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던 엄마가 시골할머니가 된 것을 싫어하던 아들. 난 지금도 아들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노란색 밴드로 머리를 질끈 묶고 마트에 간다. 우체국에 갈 때도, 보건소에 갈 때도 화장기 없는 맨 얼굴. 성당에 갈 때도 민낯이었었다. 공인이었던 나를 알아보는 이 없으니, 그게 신기하고 심지어 재미가 있었으니, 편한 대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자처했었다. 그리고 그 허물없는 마음과 행동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TV 때문인가? 화장을 다하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내게 남편이 진지하게 말을 건넨다. "아니야. 요샌 성당 갈 때 화장을 해." 했더니, "참 잘하는 일이야." 한다.

화장하는 일이 참 잘하는 일이라니...... 남편의 눈에도 정돈되고 관리하는 아내의 모습이 더 좋은가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까맣게 잊은 게 있었다. 30대에 근무하던 학교에 늘 우아하고 고운 자태로 일하는 60대 선배교사를 보며 나도 저렇게 곱게 늙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 나이가 된 나는 과연 그 '고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민 낯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마치 벌거벗은 모습이 주름 투성이요, 잡티와 거르지 않은 투박함을 자유와 순수라 했음이 착각이었음을 발견한다. 거울 저 편에 깊은 생각에 빠진 한 사람.

고운 말씨와 고운 생각. 고운 심성은 어디쯤 자리 잡고 있을까? 일을 그만두었다고, 은퇴했다고 배움도, 지성도, 우아함과 배려도 은퇴한 것은 아닌지 오랜만에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본다.

'곱게 늙는다'는 건 스스로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옷차림이 건전하면 행동도 조신해진다. 좋은 생각을 할 때, 고운 말이 나오고 훌륭한 신념이 존경을 부른다.
착각을 예방하고, 순수의 치매를 방지하는 '심안의 콜라겐'이 마음의 양식이라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당장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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