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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구름을 무기 삼아 산책을 했었다. 그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밤엔 사뭇 달랐다. "위험아 물러가라"라고 창문을 닫았더니, 바람까지 물러가버렸다. 열대야 때문인지, 올림픽 경기 때문인지 그만 잠을 설쳐버렸다.
이제야 일기예보가 제 몫을 하는가 보다. '장마 끝. 더위 시작'이라고 발표하기 무섭게 햇볕이 내리꽂는다. 퀴퀴한 냄새 젖은 이불과 베개를 햇볕에 널어놓고, 나도 따라 큰 대자로 누웠다.
집안 일, 임시 휴업! 장마가 휴업했으니 나도 따라 휴업이다. 오늘은 설거지도, 청소도, 밥도 다 휴업이다.
지난 주말, 마트에 갔다가 다 큰 아들이 시멘트에 무릎을 갈았다. 엄마를 도와주려고 짐을 나르다가 그만 방지턱에 걸려 넘어진 것. 체중과 비례해서 무릎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이 더위에 상처 또한 사서 고생이다. 병원에 데려다주고, 드레싱을 마친 아들과 오늘도 외식.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중천에 뜬 해 때문에 산책도 불가. 풀 뽑기도 불가. 할 일 없이 늘어진 오후다. 빈둥빈둥, 길게 늘어진 해 그림자를 베개 삼아 누웠지만, 잠보다 더위가 먼저 쏟아진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까딱까딱.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새벽까지 시청한 올림픽 경기는 재방송. 예능 프로그램도 재방송. 좋아하는 여행 채널도 죄 재탕 천국이다. 그래서 찾은 곳은 또 홈쇼핑 채널이다. "이제, 그만 사야지." 해놓고 손가락이 바쁘다. 엊그제 남편과 함께 뚫어져라 시청했던 '콜라겐'. "이 방송 끝나면 세일도 끝. 덤으로 주는 것도 끝' 이라니, 또 손가락이 까딱까딱. 할 일 없이 시간이 많아지니, 느느니 홈쇼핑이다. 이미 남편 티-셔츠와 루테인을 구매했고, 어젠 콜라겐을, 오늘은 화장품을 주문했다.
'텅'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엊그제 주문한 '제주 생선 세트' 택배가 도착했다.
홈쇼핑을 시작한 지 2년여. 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홈쇼핑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해지는 양상이다. 의, 식, 주 모두를 손가락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아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엄마, 홈쇼핑도 거품이에요. 쇼호스트와 광고 비용이 다 소비자 몫임을 아시는지요?"
아이고, 그렇구나. 귀가 얇으면 손가락이라도 굵어야 하건만, 이 가는 손가락에 열쇠라도 채워야 하는 걸까?
늦게 배운 도둑질. 홈쇼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니, 이를 어쩌랴?
"괜찮아. 40년 일했어.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아니야. 발품을 팔아야지. 뭔 소리......"
낮잠에서 깨어났는데, 이게 꿈이야? 생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