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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대목장날

요술공주 셀리 2024. 9. 11. 15:39

굳이 횡성 재래시장을 찾은 이유는 가성비를 생각해서다. 게다가 다양한 물건을 한 곳에서 살 수도 있고 사람구경, 장구경도 쏠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이르지 않은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후회를 했다. 시장은 입구부터 자동차 지옥, 햇볕지옥이었다. 사람들도 북적북적, 더위도 지글지글 끓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라는 재래시장의 메리트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생각보다 힘든 찜질 더위다. 시장 구경이고 뭐고, 메모한 리스트대로 구매하고 빨리 귀가하는 게 목표가 되었다.

김칫 거리, 잡채 거리, 차례상에 올릴 물건을 조목조목 빠뜨리지 않고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나 견물생심. 메모에 없던 노가리와 누룽지, 복숭아와 돼지족발도 구매했다. 그리고 오늘 시장의 최종목표, 갈비찜 재료를 사기 위해 가장 가까운 정육점을 찾았다. 손님은 없으나, 주인과 점원 세 명이 나란히 갈비 작업을 하느라 손님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저..., 수입산 찜 갈비 있나요?" 그제야 쳐다보는 한 사람. 나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하던 작업을 계속하면서 "예. 있어요."  짧게 대꾸를 한다.
"호주산 인가요? 미국산 인가요? 좋은 걸로 0kg 주세요." 했더니 "미국산이요." 하면서 비닐봉지 두 개를 꺼내온다.
"0kg 담아 주세요." 했더니, "알아요. 아까 말했잖아요." 하며, 짜증 섞인 말로 되받는다. 내 질문이 저리 짜증 낼 일인가? 당황한 나는 "사장님이 대목에 많이 힘드신가 봐요." 했는데, 같은 말을 두 번 묻지 않았느냐 오히려 핀잔이다.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돼지고기 반 근, 소고기도 반 근 갈아주세요." 했는데, 이 번엔 양이 작다고 투덜댄다. "동그랑땡 전 붙일 거예요." 하니, 그제야 옆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찜고기와 간고기를 포장해 줬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미운 말투였었나? 0kg을 재차 확인한 게 그리 큰 잘못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기 사러 갔다가 화를 채우고 나왔는데, 밖에 나와서도 기분 나쁨이 쉬 가시지 않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을 때도 주인이 갑인 것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재료가 떨어졌으니 통일해서 주문해 달라는 압력?을 받은 적이 있고, 돈가스집에서도 그랬다. 3인분의 쫄면을 시켰는데, 2인분이거나 4인분 짝수인분만 가능하대서 4인분을 사 온 적도 있다.
착하고 순수한 시골사람들이라서 주인의 불친절에 너그러워서일까? 식당 주인도 정육점 주인도 불친절에 갑질이 일상적이니......
설마, 시골에 산다고 고객을 무시하는 거?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화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주차를 한 남편과 만나 장을 본 물건들을 나눠주고, 저녁에 먹을 족발과 아들이 좋아하는 껍데기, 한과와 주전부리를 사면서 기분은 저절로 풀어졌다. 그러나 곳간이 넉넉해서 시골의 재래시장의 인심도 넉넉할 거라 생각한 내 잘못이다란 자기비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기대를 저버린 또 하나의 사건. "엄마, 돼지껍질이 이상해요. 냄새 맡아보세요." 저녁에 먹으려고 사 온 돼지 족발과 껍데기였는데, 고추장 양념한 돼지껍질이 푹 쉬어서 쓰레기냄새가 났다. 오늘 요리한 상품이 아니었던 것. 한 점도 못 먹고 모두 버려 버렸다. 어쩌나? 여기 더 오래 살아야 하는데 이 씁쓸함을 어찌해야 할꼬?
에누리 없고 칼 같은 도시의 마트도, 덤도 없어지고 인심도 흉해진 재래시장도 도긴개긴.
오늘은, 횡성 재래시장의 상도덕과 불친절에 상처받은 날이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원주의 대형마트에 갈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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