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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달이 났다.
하루 종일 전투적으로 일을 한 끝은 기진맥진. 급체로 고생을 했다. 오랜 시간,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한 탓이다. 오전엔 전지와 꽃범 이식. 오후엔 여기저기 손을 봐줬는데, 멀칭 한 밭 흙이 도로로 쓸려 가지 말라고 블록을 쌓을 때, 앉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웠다. 뭐, 가끔 있는 일이니 무시하고 목수국 아래 자라고 있는 잡초까지 죄 뽑아내고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쩐지 힘이 없고, 어지러움이 지속되었다.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뭔가 불편해서 누룽지를 끓여 한 술 떴는데, 식욕이 없다. 한 술로 끝. 아무래도 점심 후, 커피와 함께 먹은 땅콩 때문인 것 같다. 그제야 소화제를 털어 먹고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배의 근육도 꾹꾹 눌러 풀어주고 난로까지 지폈지만 별 차도가 없다. 이러다가 한밤중에 아프면 어쩌나에 생각이 미치자, 덜컥 겁이 났다. 어쩌나? 망설임 없이 어제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아?" 저녁도 거르고 득달같이 달려온 남편이 걱정이 많았다. "그러게, 왜 무리를 했어?" 남편이 팔다리를 주물러 준 탓일까?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팠던 머리가 개운해졌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 뭐가 걱정이겠나.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까지 잘 잤다. 벌써 어제 일이다.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좀 좋아진 컨디션이지만 여전히 멍~하고, 띵~한 느낌이 있다. 기분 나쁘게 이 증상이 지속된다. 흰 죽을 쑤어 먹고, 난로를 지폈다. 비가 내린 것 같아 밖에 나가니, 비가 오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꼭 내 상태 같다. 아프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겉 흙만 간신히 적신 비 때문에 이식한 꽃들에게 물을 줘야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쉬는 게 좋겠다. 난로 옆에 앉으니 잠이 쏟아진다. 제대로 이불까지 덮고 두어 시간 낮잠을 잤나 보다.
배에서 소리가 난다. 뽀로롱~, 새가 들었나? 꾸르륵~ 뭔 비둘기 소리? 동생말로는 위가 움직여 소화될 때 나는 소리라고 했으니 좋은 징조겠지? 신기하게도 낮잠이 약이 되는 것 같다. 암튼 배가 고프다는 생각과 무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다행이다 싶다.
무리하지 않는다 다짐을 한 게 엊그제인데, 참으로 미련하고 바보 같기만 하다. 일에 직진인 성격 때문에 사서 고생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러니 오늘은 제발 쉬어가자.
오후가 되니 무겁던 먹구름이 물러갔다. 가는 햇살에 푸르름이 더해가는 봄이 완연하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쉼표를 찍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