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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하기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도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일에 말이다. 왕바림이 잣나무를 흔들고 쌓인 눈을 뒤집는 추위가 새벽을 헤집어 놓더니 실내온도가 10도를 가리킨다.
유난히 일교차가 큰 여기는 해만 사라지면 롤러코스트다. 기온은 한꺼번에 곤두박질, 급강하다. 낮동안은 햇볕의 힘으로 난로가 없어도 평균 20도를 유지하다가도 새벽이 되면 7~8도가 내려가는데 오늘 아침은 최저 10도를 기록했다.
수녀님이 탄소중립, 기후변화 특강을 하면서 '실내온도를 한겨울에도 18도를 유지한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콕 박힌 뒤에는 가급적 지켜보려고 애쓴 탓도 있지만 어제는 샤워 후에 온도계를 잘못 돌려놓은 탓이 크다. 그러니 10도로 내려갔어도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밤잠을 설친 이유도 추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로를 피웠지만 흐린 날씨에 실내온도가 쉽사리 오르지 않는다. 햇볕이 쏟아지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20도가 되었고 추위로 얼었던 몸도 겨우 풀렸다. 사서 고생을 한 것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스웨터만한 옷이 없다. 보온성 갑인 스웨터 중에 최애하는 건 아들이 버린다는 걸 가져온 빨강스웨터다. 손뜨개한 순모 스웨터만 서너 벌인데도 유난히 빨강스웨터를 즐겨 입는 것은 적당한 두께와 보온성 때문인데 구멍이 난 줄 몰랐었다. 큰 손녀가 "꼬꼬 할미! 여기 구멍이 있네" 해서 보니 유독 오른쪽에만 세 군데나 구멍이 나 있는 것이었다.
수녀님의 특강이 아니었어도, 어릴적 검소함이 밴 부모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어도, 나이가 들면서 오래되고 편한 옷이 좋아졌다. 넉넉함이 좋아 꼭끼는 옷보다 아들이 입던 옷이 더 좋고 여기 와서는 꾸미지 않는 민낯으로 살고 있다. 일할 때는 땀을 잘 흡수하는 면으로 된 옷이면 그만이요, 겨울 또한 따뜻함이 최고라서 구멍 난 옷이면 어떠랴. 레트로 하고 빈티지한 옷을 입는 패셔니스트들은 일부러 구멍을 내기도 하는 것을......물취이모(勿取以貌),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인데, 지키려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게 바라봐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과도한 소비보다 검소함이 미덕이라며, 스스로 부지런한 아름다움보다 게으른 편안함을 실천한 지 오래다. 그래서 이 구멍난 스웨터는 아마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용모단정해지려는 노력은 아끼지 않을 것 같다. 남루함과 청빈함은 다른 의미일터이니, 늘 우아함은 지키고 싶다. 비록 민낯일지언정 나이만큼, 지혜롭고 큰 마음의 소유자로 살아가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