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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교사시절, 미술시간인 것 같다.
남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남학생들은 미술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떻게든 '재미있는 미술시간'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리기보다 목공예나 금속공예 등 만들기를 주로 가르쳤는데, 그때 염색물감(특수물감)을 만난 것 같다.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을 따라 그려보았더니 종이나 캔버스에 그리는 것과 달리 묘한 매력이 있어 염색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얼룩이 진 헝겊이나 낡은 옷에 재활용하기 위해 그렸던 것을 자신이 붙자 흰색 면 T-shirt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손수건은 판촉물로 판매하는 대용량(흰색 무지) 손수건을 구매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10여 년 전 ㅇ중학교에 근무할 때, 무지 손수건 한 box를 구매했다. 한 box에 500여 장의 흰색 손수건이 채워져 있었으니 그동안 그려서 선물한 양이 500여 장. 500여 명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3월 1일 자와 9월 1일에 승진을 하거나 영전한 사람들에게 축하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 난초 화분을 보냈을 때보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림 그리는 동안 나는 즐거워서 좋았고, 받는 사람은 부담은 없지만 특별한 그림이어서 좋아라 했다.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있었는데, 사람들은 손수건 보다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거나 테이블 유리 밑에 보관하는 일이 더 많았다.
새학기, 새로 구성된 간부(교감 및 부장)들과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거나, 고마운 지인들에게도 염색 손수건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20여 년 가까운 시간, 500여 명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애기똥풀 염료로 물들인 두장의 손수건 중에 한장은 어제 개나리꽃을 그렸다.
마지막 남은 한장에 그림을 그리려다 가위자욱을 발견 했다. 두 군데나 아주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어쩌다 구멍이 생겼는지 모르겠으나 내버려 두면 구멍이 커져 무용지물이 될 터이니 응급처치를 했다. 하기 싫은 바느질을 해서 꼼꼼하게 구멍을 메웠다. 하자가 있는 재료는 선물을 할 수 없다.
아는 지인에겐 있어도 정작 내 것은 한 장도 없으니, 구멍난 것으로는 내 손수건을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그런 손수건 재료가 바닥이 났다.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box에 늘 채워져 있으려니 했는데 우와, 남은 재료가 10장도 안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대용량으로 구매한 특수물감도 보라색은 이미 동이 난 상태고 자주 애용한 노란색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또 고민이 생겼다. 손수건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할지, 몇 장 안 남은 하얀 손수건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만 그려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이미 퇴직을 한 선배와 동료들, 몇 안 되는 후배들 또한 정년이 가까워 오니 손수건 그림은 이제 졸업을 해도 될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