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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이기원

화가 '이기원'

요술공주 셀리 2022. 7. 25. 10:54

  일경(一耕) 이기원(李基遠, 1927-2017). 그는 한 밭만 경작한다’라는’ 의미의 호처럼 일생에서 추상이라는 장르를 추구하면서도 서정적 심상의 투영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색의 표현을 끝까지 고집한 작가다. 하지만 90년의 긴 생애 동안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작품을 발표하는 것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여, '창작미술협회' 동인전과 기타 몇 차례의 단체전을 제외하면 오직 단 한 차례의 개인전만을 가졌을 뿐이다.

  또한, 상업주의에 편승해 작품을 무분별하게 양산하는 것도 거부, 일생 중 제작한 100여 점의 작품을 일절 매매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작가의 존재는 미술 시장 등 대중적인 면에서 그리 이슈에 오르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고,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작가 생전부터 사후에 해당하는 현재까지 번번한 연구조차 한 편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기원은 1927415, 충청북도 청주에서 종갓집 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이후 1941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던 중 1944, 마지막이 된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에 오른다.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당시 출품작은 <풍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당시 선전 도록이 발간되지 않아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다만 17세 소년 시절 일찍이 대규모 관전에 입선했다는 사실에서 그림에 일찍이 두각을 보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덧붙이면 이 시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일본 유학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가정 사정 및 격변의 시기와 맞물려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해방 직후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6, 한국에서도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조선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지에 미술대학이 하나둘씩 부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기원은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워보겠다고 결심한 듯, 그해 10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한다. 당시 9명의 교수진 중 서양화과에 출강하던 교수진은 ‘장 발’(학과장), ‘김환기’, ‘길진섭이 있었는데, 이 중 김환기와 길진섭은 일본 유학 시절 일찍이 모더니즘의 흐름을 받아들인 스승이었으므로 후에 이기원이 추상의 길로 들어서는 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시기의 작품 역시 현재는 한 점도 전해지지 않아 당시의 가르침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안태연(미술사가), “이기원, 사색의 창을 향하여”(201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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