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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이기원

화가 이기원 5(적)

요술공주 셀리 2022. 7. 28. 09:20

    196212, 국전에서의 활동에 더해 이기원의 창작에 있어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것은 창작미술협회에 합류한 것이었다. 1957년 창립된 창작미술협회는 주의를 주창하는 선전적인 행동보다 제작에서 나오는 작품으로 주의를 형성코자하는 목표를 내건 동인이었으며, 당시 동인들 대다수는 국전에 출품을 이어가면서도 모더니즘의 흐름을 동시에 수용하고자 했던 작가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계속 국전에 추상회화를 출품해 연이어 입선에 오른 이기원도 동인들의 취지에 공감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합류한 이듬해 개최된 제7회전을 시작으로, 2011년 제56회전까지 이기원은 매년 빼놓지 않고 동인전에 출품하여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창작미협 동인들이 개인전을 연다고 하면 항상 오프닝에 참석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지간히도 창작미협 활동에 깊은 정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첫 참여인 제7회 창작미협전의 출품작 중에는 <()>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현존하는 이기원의 유작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앵포르멜의 영향이 당시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이 작품도 기본적으로는 앞서 국전에 출품한 <푸른 상>처럼 화면 전체에 일정한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비정형 추상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붓보다는 나이프를 주로 활용해 물감을 덧칠하고 긁어내는 것을 반복하였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마티에르로 화면을 덮어 주었다.

 

  하지만 회갈색 위주의 중간톤으로 가라앉은 색채는 거친 행위의 터질 듯한 열기보다는 은은한 색채의 중첩에 따른 서정적 정취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고요함이라는 의미의 명제에서도 암시되며, 여기서 이기원이 일찍이 추상에서 격정보다는 시적 서정의 표현에 대해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선배이자 리더였던 류경채의 작품과 유사한 면모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기원은 선배 중에서도 유난히 류경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따랐다 하니, 추상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류경채의 작품을 참고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02. 이기원-적(寂), 1963년, 캔버스에 유채, 145.5×97cm, 제7회 창작미협전 출품〕

 

 안태연(미술사가), “이기원, 사색의 창을 향하여”(201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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