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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이기원

화가 이기원 7(日 月)

요술공주 셀리 2022. 7. 31. 15:45

  196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이기원은 점차 앵포르멜의 열기를 식히면서 새로운 조형 어법을 시도한다. 15회 국전과 제16회 국전의 출품작은 그 시작이었고, 이후 1968년 삼보화랑에서 1121일부터 30일까지 가진 개인전은 새로운 작업에의 변모를 본격적으로 발표하였다. 당시의 출품작 20점 중, 엽서의 표지로 쓰인 <()>은 여전히 여러 번 겹쳐 칠한 중간색의 빛깔이 화면의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거친 나이핑의 흔적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섬세한 붓질로 색 면들의 윤곽을 하나하나 선명히 구획하고 있다. , 혼란스러웠던 행위의 자취가 점차 가라앉는 대신, 점차 화면이 구조화되는 단계에 접어든 작품이었다.

 

  사실 이렇게 기하학적인 요소들로 화면을 구성하는 경향은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비정형 추상의 열기가 점차 잦아들게 되면서, 다수의 작가가 대안으로 채택한 방식이기에 이러한 양식 자체만으로 보면 그리 독자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원은 당시 비정형 추상의 대안으로 떠오른 기하학적 추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도, 단순히 외양을 모방하기보다는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서정적 심상의 표현을 구체화하는 장치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이기원의 작품들은 하드 에지로 구획되고 짜인 일반적인 기하학적 추상화와는 그 정서의 표현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앞서 언급한 작품 <>도 그러한 경우이다. 기본적으로는 기하학적인 구성 자체가 주는 차가움에 집중하기보다는 여전히 서정성의 표현에 대한 작가의 표현 의지가 드러난다. ‘언덕이라는 명제에서 자연 풍경을 소재로 삼았음을 암시하나, 역시 화면에서는 풍경의 현장을 직접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대신, 초지를 연상시키는 녹갈색 위주의 중간색을 곡선과 직선을 동시에 활용하여 유려하게 구획하는 것으로 자연이 주는 인상을 마치 시적인 여운처럼 부드럽게, 또 은은하게 전달한다. 이는 앞서 제16회 국전의 특선작 <일월(日月)>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기서는 색 면으로 분할된 공간 속에 놓인 태양과 달의 형상이 조선 시대 왕실에서 쓰인 병풍 <일월오봉도>를 의식하였음을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과거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화면의 서사성, 즉 서정의 근원을 제시한 것이다.

 

 

이기원-일월(日月), 1967,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16회 국전 특선

 

 글:  안태연(미술사가), “이기원, 사색의 창을 향하여”(2019)에서 발췌

사진: 충북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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