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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서성이고 있다.
어젯밤에 꼼꼼히 메모해 놓은 쪽지의 내용이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꽈리고추와 가지, 노각, 토마토, 깻잎과 양배추, 참외를 따러 밭에 나갔다. 해가 중천에 떴으니 콧등에 땀 한 방울이 조르르 흐른다.
내일은 아들네 가는 날이다.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고, 사진에서만 보던 제법 성장한 손주를 보러 갈 예정이다. 누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부모님을 모시러 온 요양센터 차 소리에 깨었는데 앗, 9시다.
아들 내외가 이걸 좋아할지 모르겠다. 땅을 파고, 심고, 가꾼 내겐 신기하고 장한 채소지만, 마트에 가면 지천으로 있는 것들이다. 참외는, 무늬는 그럴싸한데 당도가 떨어져 맹숭맹숭한 맛이다. 구부러진 가지와 작디작은 토마토. 아들은 분명 "마트 가면 다 있는데 무겁게 이걸 왜 들고 오셨어요?" 할 것이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평소 뭘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데다, 요리 또한 자신 없는 사람이다. 어린 손주 때문에, 아들은 좋아하는 고기도 못 구워 먹는다고 했다. 유독가스와 냄새가 아이에게 해가 된다나? 그래서 불고기와 깻잎나물, 꽈리고추 멸치볶음은 만들어가기로 했다. 고소한 깻잎 냄새, 달달한 불고기 냄새가 한가득, 명절 같은 날이다.
일을 하는 딸 때문에 아이를 돌봐주시는 사부인이 참 고맙다. 아들은 이해 못 해도 사부인은 싱싱한 유기농을 좋아하시겠지? 노각, 호박, 토마토 등 사부인 몫을 따로 준비했더니 제법 무겁다. 아들네 짐보따리까지 두 덩어리다. 뭐, 무거운 보따리 두 개쯤이야!
강원도할머니, 아들네 간단다. 오늘은,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