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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부터 색 면을 구획하는 윤곽의 처리는 이전보다 명료해지고, 또 섬세해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전보다 더욱 정갈한 인상이 두드러지며, 그런 점에서 이 시기 작품들은 이전보다 화면의 긴밀한 짜임새에 더욱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열린 창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투영되고 굴절됨에 따라 공간을 밝히는 현상을 분석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전과는 달리 곡선의 활용은 별로 나타나지 않기에 전체적으로는 단정히 각이 잡힌 듯한 인상을 주지만, 자칫하면 화면의 인상을 차갑게 굳어지게 하여 화면의 서정성을 저해할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를 중화시키는 요소도 유심히 고려하면서 작업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색채의 활용이었다.
우선 1960년대에 주로 사용된 회갈색이나 녹갈색, 황갈색 등 중후한 빛깔들의 비중을 줄인 대신, 엷은 청색이나 다홍색 등 밝고 화사한 빛깔들을 주로 사용하여 화면에 경쾌함을 불어넣었다. 또한,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도 물감의 기름기를 덜어낸 뒤 엷은 두께로 수차례 색채를 칠하고 말리고 다시 덧칠하는 기법을 반복, 원색을 중화시키면서 겹쳐지는 층위의 깊이감을 더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엔 단순히 하나의 색채를 채도만 다르게 하여 배열한 듯하나, 실제로는 그 안에 무수한 색채의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통일시키면서도 자연광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 부분적으로는 명도가 높은 백색의 색 면을 활용, 열린 공간 속에 직접 투사되는 광선 그 자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화면에 하이라이트를 더하여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지만, 여기서도 튜브에서 바로 짠 흰색이 아닌 배경에 사용된 색을 조금 섞어서 지나치게 튀어 보이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기원-초원, 1977년, 캔버스에 유채, 162.2×112.1cm, 제26회 국전 추천작가 출품〕
글: 안태연(미술사가), “이기원, 사색의 창을 향하여”(2019)에서 발췌
사진: 충북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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