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 4, 6, 8, 10...... 홈쇼핑 채널은 2의 배수 짝수라서 저절로 외워진다. 손쉬운 홈쇼핑 채널 때문에 밤에만 시청하는 tv를 하루 종일 켜놓고 있다. 의, 식, 주뿐만 아니라 보험, 여행 상품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이곳은 쇼핑 천국. 게다가 손쉬운 주문과 문 앞 배달까지, 홈쇼핑에 빠진 이유가 단지 외우기 좋은 채널 번호 때문이었겠는가?
"언니, 이 바지 홈쇼핑에서 산 건데, 가격도 착하고 품질도 괜찮아. 언니도 해 봐." 동생은 옷뿐만 아니라 이불과 그릇, 심지어 식품까지 두루 즐기는 홈쇼핑 마니아다. 홈쇼핑을 극찬하는 동생에게 "난 싫어. 자고로 물건은 눈으로 직접 보고 사야 해."라며 단칼에 거절을 했던 내가 하루 종일 짝수 채널을 돌리고, 주문을 하고, 상품을 기다리며 뜯어보는 홈쇼핑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시골살이가 부익부 빈익빈이다. 잉여 생산물과 인심은 넘쳐나지만, 쇼핑과 병원은 여전히 쉽지 않다. 어느 날, 우연히 돌린 홈쇼핑에서 덜커덕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세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사용하던 프라이팬의 코팅이 벗겨져 구매가 시급하던 차에, 낯익은 연예인 쇼호스트의 신뢰감? 과 매진이 임박하다는 다급한 심리에 끌려 주문을 하게 된 것인데, 다행히 도착한 프라이팬은 마음에 쏙 들었다. "아, 홈쇼핑 괜찮네." 그렇게 시작된 홈쇼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문을 하니, 현관엔 택배 상자가 수북수북 쌓여갔다. 프라이팬, 갈비 세트, 바지, 냄비 세트, 그릇, 비타민, 염색제를 구매했고 오늘은 헤어드라이를 또 주문했다. "아, 난 충동구매는 안 해." 그래서 트레이닝복과 앵클부츠, 명품백과 산양유, 과일세트 등 더 사고 싶은 상품이 있어도 잘 참았다고 스스로 칭찬까지 하면서 좋아라 했다.
그런데, 창고에 쌓인 택배 상자를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다. 산더미처럼 쌓인 상자를 뜯어 정리하는 데만도 한나절.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아이고, 미니멀하게 살자며 옷장과 찬장을 비운 게 엊그제였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적게는 몇만 원부터 많게는 몇십만 원까지 이 또한 합산을 해보니 삼주 만에 입금한 액수가 백만 원 단위다. 통장정리를 해 보니 우왕, 이를 어쩌나! 결국 가볍게 살자는 결심도 깨지고 통장도 가벼워졌다. 처음 프라이팬을 살 때처럼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물론 필요한 구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견물생심, 충동구매였다. 미니멀해지자고 비우던 엊그제를 기억했어야 했다.
awareness! 자각하고 깨어있어야 했다.
이제라도 미니멀해지자는 초심을 생각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채우기보다 비워서, 가볍게 살자. 마음이 가난한 사림이 되려면 그래, 이 빗속에 저 불필요한 욕심은 과감히 던져버리자.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으니 안되는 일은 또 없다. 평소처럼 오늘 낮동안은 tv를 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