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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뭐야 또 눈이 쌓였어." 일찍 일어난 남편이 운전 걱정을 하며 한숨을 토했다.
"쌓였어? 쓸어야 해?" 하면서 문을 열었더니, 얇은 이불 한 채만큼의 눈이 쌓여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 때문에 또 빗자루를 들었다. 부모님 걸어가시기 전에 서둘러 눈을 치우는데, 눈 아래로 유리 같은 얼음이 한켜씩 깔려 있다. 차라리 쌓인 눈을 밟고 걷는 것이 더 안전할 듯. 반들반들 언 눈을 삽으로 깨는 데 걸린 시간이 눈 쓰는 시간보다 배는 더 걸렸다.
봄이 오는 입춘이라는데, 계절이 뒷걸음치나 보다. 햇볕만 보고 가볍게 입고 부모님 집 청소를 하러 갔다가 찬바람에 볼따귀를 맞았다. 제법 아리고 따갑다.
"언니, 언니가 좋아하는 묵밥을 했으니 12시 반에 올라와요." 반가운 옥이 목소리다. 3주 만에 내려온 옥이의 점심 초대. 식탁엔 진한 사골국물에 김치 송송 썰어 넣은 묵밥이 큰 대접에 가득 담겨 있다. 묵밥보다 오랜만에 보는 옥이네가 더 반갑다. 옥이 얼굴 보고, 묵밥 한 수저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게다가 강원도에 와서 사랑에 빠진 배추 전까지 맛있게 먹었으니, 우왕! 배불러.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우린 오랫동안 반가움을 채웠다.


산책할까 망설이다가 바로 포기를 했다. 길도 미끄럽고,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럴 땐 방콕이 최고다. 난로 옆에 붙어 앉아 불멍을 하다가 쌓인 재를 털러 마당에 나갔다. 눈 쌓인 꽃밭에 재를 터는데 "어머나, 종이꽃이잖아?" 작고 앙증맞은 노란 꽃이 눈에 띄었다. 영락없는 생화다. "엄동설한에 꽃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헛 것을 보았나?" 남쪽의 종이꽃 군락으로 달려갔다.

"어머나, 진짜네."

여름 장마와 가을바람, 눈과 얼음을 어찌 견디고 저리 피어있을까? 그런데 수없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는데도 난 오늘에서야 저 꽃을 발견했을까? 설마 입춘이라서???

2월이다. 꽃샘추위가 제법이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인들 밀고 오는 저 봄을, 어찌 버틸 수 있겠니. 오늘이 벌써 입춘인 것을......
